지난해 우리나라의 온갖 ‘갑질 뉴스’가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갑질 문화는 한국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우리 삶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경제계의 불평등 문화다. 경제학에서 거래는 경제 주체 간에 자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상호 이익이 없는 곳에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본다. 갑질을 당하더라도 거래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면 부당한 대우도 묵인하게 된다. 예컨대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그나마 거래가 끊긴다면 아쉬운 쪽은 중소기업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거래에서 생기는 모든 이익을 한쪽이 가져가도 괜찮다고 본다. 생성되는 사회적 잉여의 합만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즉, 불평등 거래로 인해 거래 당사자가 각각 99와 1을 배분받는 것이 균일하게 45를 배분받는 거래보다 더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금액의 총합은 ‘99+1’이 ‘45+45’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동주의 경제학자들은 45를 균일하게 받는 거래가 더 좋을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회사가 어려워서 임금을 100밖에 줄 수 없는 경우와 회사가 잘 운영되는데도 임금을 100밖에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두 상황에서 종업원이 느끼는 실망감이 다르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로 공정하게 행동했을 때 도달하는 ‘공정성 균형’이 일반 경제학에서 말하는 균형보다 더 좋을 수 있다고 한다. 서로 협력하는 공정성 균형에 도달하게 되면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의 ‘루즈-루즈(lose-lose) 균형’에서 ‘윈-윈(win-win) 균형’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성 균형의 창시자인 매튜 라빈 UC버클리 교수는 경제적 거래에서 생성되는 부의 총합이 중요하지만 배분의 공정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공정성 균형이 한국에서는 잘되고 있는가 반성해 볼 일이다. 요즈음 한국 경제는 회복하고 있으며, 상장사의 이익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여전히 힘들다고 한다. 최근에 만난 중소 제조기업 사장이 한 말이다. “과거에는 대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면 협력사들도 같이 좋아졌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 갈수록 심화

과연 대기업이 99를 가지고 협력업체는 1을 가지는 경제가 더 좋은지 아니면 대기업이 80을 가지면 협력업체가 20만이라도 가져가는 경제가 좋을까.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작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발표한 ‘2016년 중소기업 위상지표’에 따르면 2009년과 2015년을 비교했을 때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지고 중소기업의 경영성과는 대기업에 비해 더 나빠졌다. 중소기업의 이익은 줄어들고, 이익이 없는 중소기업은 임금 인상을 해 줄 여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같은 기간에 일자리 창출의 기여도를 보면 중소기업이 88.8%이고 대기업은 11.2%에 불과했다.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54% 수준으로 미국(73%)과 일본(79%)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는 우수인력의 대기업 집중과 중소기업 인력난을 가져오며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한 이익배분에 대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금까지 성장 위주 정책으로 국부가 증가했지만 양극화로 인해 사회는 더 피폐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바꾸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동반성장 정책과 공정거래 정책이 필요하다. 경제계의 양극화와 갑질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동반성장위원회가 2010년에 설립됐다. 지금까지 많은 정책을 입안하고 사회 계도를 해왔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좀 더 효과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민간협의체에서 공식적인 정부기관으로의 변신이 필요하다.

갑질 문화는 일종의 시장실패다. 이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와 의욕상실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계량화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큰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실패가 있는 곳에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