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양승용
일러스트 양승용

로봇이 돌아오지 않았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의 우주 기지에 비상이 걸렸다. 기지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 동력원인 셀레늄 채굴을 명령받은 최신형 로봇이 채굴을 하지도 않고, 돌아오지도 않았다. ‘로봇 3원칙’이 문제였다. 제1원칙, 인간을 다치게 하거나 다칠 수 있는 상황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제2원칙,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한다. 제3원칙, 제1·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을 보호한다는 3가지 원칙인데,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셀레늄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반드시’라는 말이 빠져있는 약한 명령이었고, 광산은 로봇의 특수 합금도 녹여버릴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명령 수행(제2원칙)과 자기 보호(제3원칙)가 충돌하면서 광산으로 달려갔다가 도망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최상위 원칙인 제1원칙이 해결책이 됐다. 한 대원이 죽음을 각오하고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의 지옥 같은 더위 속으로 나섰다. 우주복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20분에 불과했다. 로봇은 이 대원을 구하기 위해 돌아왔고, 이번에는 “반드시 셀레늄을 구해오라”는 명령대로 위험을 무릅쓰고 셀레늄을 구해왔다. SF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가 1942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 ‘런어라운드(runaround)’의 내용이다. 여기서 아시모프가 창안한 ‘로봇의 3원칙’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로봇은 인간의 충실한 ‘하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98년 전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로섬의 만능 로봇’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로봇은 사람이 해야 할 위험한 일, 고된 일을 대신할 강철로 된 인조인간으로 묘사됐다. 그러니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역할을 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로봇을 고용하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로봇과 일자리를 경쟁해야 하는 사람들은 많다는 것이다.


‘로봇노동’ 걱정보다 청년취업이 시급

미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향후 10년 이내에 일자리를 위협할 최대 위험요인으로 로봇을 꼽았다고 한다. 외국 이민자들이나 미국 기업들의 공장 해외 이전보다 인공지능(AI)을 더 위협적으로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얼마 전 외신이 보도했다. 미국 노스이스턴대와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작년 10월 미국 성인 남녀 3297명을 대상으로 “앞으로 10년 내 일자리를 위협할 최대 요인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58%가 로봇과 인공지능을 꼽았다고 한다. ‘이민 유입과 공장 해외 이전(42%)’을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또 응답자의 70% 이상이 “AI로 말미암아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다. 하지만 로봇의 제1원칙에 따르면 로봇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인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실업은 실직자의 영혼을 갉아먹고, 장기적으로는 건강도 해칠 수 있다. 그러니 인간이 직장에서 쫓겨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근로자의 일자리를 대체하라는 고용주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기껏해야 제2원칙일 뿐이다. 제2원칙은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유효하다. 로봇이 인간 일자리 대체를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 본다.

10년 뒤에는 몰라도 우리는 아직 AI에 일자리를 뺏길 걱정보다 취업난이 발등의 불이다.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인 상황이다. 정부 일자리 대책의 제1원칙은 세금 풀어서 일자리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무원 등 공공 부문에서 17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1000만원을 지원해 대기업 임금에 맞춰준다고 한다. 지원 기간이 최장 5년이다. 첫 5년간은 대기업 수준의 임금을 받고, 그 후로는 중소기업 월급을 받는 일자리가 오래 갈 수 있을까?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도 세금으로 지원책을 만들었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서 바느질을 할 수는 없다. ‘깡통 로봇’도 알 만한 일인데 엘리트 경제 관료들이 이걸 모르는 모양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라면 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