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자들은 흔히 “진정한 혁신은 스타트업만 할 수 있다”고 한다. 대기업들은 기존의 사업 방식이 유지될 때 자신들의 기득권이 지켜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양을 횡단하는 범선을 제작하던 회사들이 결국 증기선에 의해 없어졌고, 마차를 생산하던 회사들은 자동차에 의해 대체됐다고 한다. 산업 4.0 시대에 진입한 지금, 재래 산업은 또 한 번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공유경제, 인공지능, 블록체인과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을 활용하는 스타트업들이 지속적으로 기존 산업 분야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들은 전통 기업들보다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10배 이상 편리하거나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종전에 소비자는 비싼 장거리 국제전화를 사용했어야 했는데 스카이프라는 인터넷 화상전화가 등장해 무료 국제통화를 할 수 있게 됐다. 가히 10배 이상의 혁신이라고 할 만하다. 또 금융회사의 투자상담을 AI로봇이 하는 것이 현실화되고 있는데, 이 역시 금융회사에 엄청난 비용 절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처럼 산업 4.0 시대의 스타트업들은 비용이나 서비스 측면에서 차원이 다른 편익을 약속하면서 기존 기업들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 통신 회사, 백화점, 자동차 회사들은 점차 사라져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다행히도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창조적 파괴를 통해 자신의 사업을 재설계하고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창조적 파괴를 한 기업들은 어떻게 부활에 성공할 수 있었으며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변신에 성공한 소니·월마트 배워야

아날로그 시대에 최고 기업이었던 소니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면서 애플, 삼성전자, 구글로부터 자신의 시장을 거의 다 빼앗겼다. 그래서 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부활에 성공했다. 작년에는 20년만에 최대 흑자를 냈다. 경쟁력 없는 PC 사업을 매각하고 스마트폰 사업은 대폭 축소한 반면, 프리미엄 TV와 콘솔게임 부문을 강화한 구조조정 덕분이었다. 회사 규모가 전성기 때보다는 작아졌지만 더 내실 있는 회사가 됐다.

한때 사진 필름 부문에서 세계 2위 기업이었던 일본의 후지필름은 디지털 카메라의 출현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후지필름은 합작사 후지제록스를 통해 복사기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고, 자사가 보유한 이미징 기술을 활용해 의료영상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또 필름 코팅기술을 응용해 기능성 화장품 시장에 진입했는데, 현재 1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월마트도 전형적인 굴뚝기업에서 산업 4.0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미국 소매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던 월마트는 아마존의 진입으로 온라인 시장을 많이 내줬다. 그러나 월마트는 아마존 전략을 모방해 시장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제트닷컴이라는 온라인 소매기업과 파셀이라는 물류회사를 인수해 아마존이 지향하는 낮은 가격, 높은 서비스, 총알배송의 세 박자를 모두 갖춘 것이다.

미국의 3대 대형 항공사(델타·유나이티드·아메리칸)는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이익이 많이 난 항공사로 부활했다. 10년 전 자신들을 파산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저비용 항공사를 모방한 것이 부활 비결이다. 대형 항공사들은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노무비를 줄이고 서비스도 줄여 저비용 체제를 갖췄으며 무료로 제공하던 서비스를 유료화했다. 이와 함께 항공요금도 낮춰 저비용 항공사들과 경쟁이 가능해졌다.

부활에 성공한 기업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고 시대에 맞게 변신했다. 필요하다면 심지어 자신을 어렵게 만든 스타트업들의 전략을 모방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장점을 선별적으로 취사선택해 기존 사업도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또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새로운 사업 부문을 빠른 시일 내에 기존 사업에 접목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교훈들을 잘 적용한다면 변신을 시도하는 한국의 대기업들도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곧 쓸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