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안타이오스와 헤라클레스의 대결을 소재로 한 그리스 우표.
거인 안타이오스와 헤라클레스의 대결을 소재로 한 그리스 우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났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무모해 보이는 사회적 실험의 강행이라는 국내외의 우려가 있었지만, 성공적인 선거였다. 그리고 선거 결과는 여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우리 국민의 선택도 다르지 않았다. 여당은 전체 300개 의석 가운데 180개 의석을 확보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인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신의 응답을 기다리는 신탁(神託·oracle)을 선택한 것처럼 우리 국민은 코로나19 사태로 생명과 경제적 안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줄 대상으로 여당을 선택한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로 정부와 여당은 각종 법안과 예산안 처리, 국무총리나 대법원장 등 요직 임명 등 사실상 헌법 개정을 제외한 대부분을 할 수 있게 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겠지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은 말할 것도 없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의 무력화도 가능하다. 정부와 여당의 3차 추가경정예산도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추진할 수 있다. 당연히 재난기본소득을 포함해 국민이 그토록 목말라 하던 코로나19 관련 대응책들도 빠르게 실현될 것이고, 시장이 받게 될 경제적 충격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걱정거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국가비상사태라는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이례적으로 빠른 정책 의사결정은 매우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정책 당국의 덕목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장 경험과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면 정책 실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많던 국민의 지지도 수많은 논란 속에서 먼지처럼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땅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 안타이오스(Antaios)의 죽음을 생각해보자. 어머니가 땅의 여신인 덕분에 땅에 몸이 붙어 있는 한 당할 자가 없었고, 땅에 쓰러지면 오히려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그가 헤라클레스(Heracles)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땅에서 떨어지면 힘을 못 쓴다는 약점을 간파당했기 때문이다. 땅이라는 탄탄한 기반을 지키지 못한 안타이오스는 죽었고, 헤라클레스는 주어진 임무를 완성해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이 됐다.

이처럼 정책 의사결정의 성패를 가르는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시장 경험과 과학적 근거라는 것이다. 소상공인 대책, 재난기본소득 등은 지원 규모의 부족, 모호한 지원기준 등으로 정책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소리가 나온다. 한국판 무제한 양적 완화라 불리는 금융통화 당국의 대책들도 정작 필요한 부문으로 자금이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등 금융시장의 비판을 비껴가지 못하고 있다. 쏟아지고 있는 고용 대책도 이런 논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지금까지 나온 정책 당국의 대표적인 비상경제 대책들만 살펴봐도 이런 약점들이 드러나는데, 앞으로는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지,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국가비상사태로 규정될 정도의 위기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최후의 강력하고 거대한 위험 감수자가 됐으면 하는 국민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마치 알렉산더 대왕이 프리기아 원정길에서 그 어떤 현자(賢者)도 풀 수 없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을 단칼에 끊고 아시아를 정복하리라는 신탁을 완성했듯이 과감하고 신속한 정책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안타이오스의 죽음이 주는 경고를 경시해서는 실패의 낙인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