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이지애>
<일러스트 : 이지애>

문재인 정부 주요 정책에는 ‘로드맵(Road map·청사진)’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5년 내 공공주택 100만 가구 공급 정책에는 ‘주거 복지 로드맵’이라는 간판이 붙었다. 며칠 전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자사고·외고·국제고 지정 취소 방법 등을 새로 정해 내놓은 정책은 ‘교육 자치 정책 로드맵’이라고 한다. 일자리 정책도, 탈(脫)원전 정책도 로드맵이다.

로드맵은 노무현 정부 시절 유행했던 단어다. 좀 거창하거나, 중장기 계획이다 싶은 것은 모두 이런 이름을 붙였다.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이 단어를 등장시켰고, 통일 로드맵, 규제개혁 로드맵 등으로 곳곳에서 사용됐다. “로드맵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으면 제대로 된 정책이 아니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위세당당하던 로드맵이라는 단어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관가(官街)에서 퇴출당했다. 이명박 정부는 로드맵을 ‘액션플랜(action plan·실천계획)’이라는 용어로 대체했다. 로드맵은 추상적인 구상이나 비전의 성격이 강한 반면, 액션플랜은 구체적인 실천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당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는 로드맵식(式)의 느슨한 계획들은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액션플랜이라는 단어도 오래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힘을 잃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한 것은 모두 폐기한다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흔적도 없어졌다. 오히려 로드맵이라는 단어가 간간이 사용됐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는 노무현 정부의 유산(遺産)이라고 할 수 있는 ‘로드맵’이라는 단어가 다시 각광을 받는 중이다. 지난 정부에서 잘나갔던 관료들이 물을 먹고, 찬밥을 먹던 관료들이 요직에 들어서는 것이나 비슷하다.


포장보다 중요한 내용은 간과

문제는 로드맵이라고 하든, 액션플랜이라고 부르든 중요한 것은 정책의 내용이다. 포장도 중요하겠지만 내용물이 더 중요할 텐데, 요즘 나오는 각 분야의 로드맵들을 보면 이래도 되나 싶어 걱정스럽다. ‘주거 복지 로드맵’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 그동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던 54만 저소득층 가구에도 월평균 11만원씩 ‘주거급여’를 주겠다고 한다. 전·월세나 집수리 비용 등을 보태주는 것이다. 여기에만 연간 7000억원쯤 들어간다. 5년만 계산해도 3조5000억원이다. 이런저런 주거 지원을 위해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주택도시기금을 헐어서 쓸 작정이다. 70조원쯤 모아놨고, 국민주택채권 등으로 매년 15조원 정도 적립되는데 이곳저곳 쓸 곳이 많아 매년 30조원씩 빼서 쓸 계획이라고 한다. 이러면 5년 뒤에는 기금이 거덜 날 수도 있다.

탈(脫)원전 로드맵도 문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사상 최초로 공론화위원회라고 만들어서 맡겼는데, 정부 뜻과는 달리 건설 재개로 결론이 났다. 가장 안전한 3세대 원전인데 위험하고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신재생 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고 이렇게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공사를 멈추고 공론화 조사를 하는 동안의 손실만 1000억원이 넘는다. 국가적 에너지 소모도 막대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신규 원전 포기, 기존 원전 수명 연장 불허’라는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겠다고 한다.

30년간 300조원이 넘게 들어갈 공무원 17만명 채용도 로드맵대로 밀어붙인다고 한다. 이 정부의 각종 로드맵들은 ‘비용’ 개념이 제대로 들어가 있지 않아 보인다. 우리 경제는 3% 성장도 힘겹다. 그런데 나라에서 일자리도, 복지도 한꺼번에 다 해결해주겠다고 나선다. 공무원 증원, 아동수당 도입 등을 위한 적자 재정이 지속되면 2060년 국가 채무가 기존 예상보다 3400조원이나 더 폭증한다고 국회 예산정책처가 경고했다. 돌아온 로드맵의 시대, 이러다 다 털어먹고 길바닥에 나앉을까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