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낮췄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낮췄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 몇 년 동안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파나마 페이퍼스’와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사건은 세계화의 취약한 부분을 보여줬다. 파나마 페이퍼스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입수한 파나마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의 내부 문서로 조세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세계 주요 인사들의 명단이 실려 있었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역시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의 내부 문서로 세계 주요 인사들이 조세회피처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내역이 담겨 있었다. 이런 문서들이 공개되자 세계 각지에서 부자들의 세금 회피에 대한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평범한 직장인들은 세금을 내지 않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부자들이나 다국적 기업은 조세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드는 방식으로 세금을 내지 않고 지내온 것이다.

오늘날 다국적 기업이 사용하는 조세 회피 방법의 특징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것이 합법적이라는 사실이다. 다국적 기업이 계열사를 만들 때, 그런 회사들은 법적으로 독립된 기업으로 간주된다. 모기업은 실제 회사가 돈을 벌어들이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에 대한 세금이 적은 국가에 계열사를 만들고, 이익도 그곳에서 발생한다고 계열사 간 거래를 설정할 수 있다. 이른바 이전가격(transfer pricing) 조작이다.


조세 회피로 稅收 213조원 사라져

다국적 기업의 이전가격 조작은 세계 주요국의 법인세 인하 경쟁에 불을 붙였다. 미국이 법인세를 35%에서 21%로 인하하면서, 법인세 인하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인도나 멕시코·브라질 같은 개발도상국의 정치인들은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싶어한다. 이들이 법인세 인하를 원하는 건 당연한 순서다.

모든 국가는 세계화된 경제 체제에서 자신들의 경쟁력을 지킬 권리가 있다. 한 국가의 경쟁력을 지키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교육에 투자할 수도 있고, 과학이나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에 자금을 지원할 수도 있다. 각종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법인세를 낮추는 등의 조세 인하 경쟁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개발도상국이 조세 인하 경쟁에 뛰어들면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세수(稅收)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 때문에 세계적으로 2000억달러(약 213조1400억원)의 세수가 사라지고 있다.

법인세 인하 경쟁은 결국 다른 나라에 돌아갈 세수를 빼앗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의 몫이었던 세수를 누가 더 효율적으로 뺏을 수 있을지 경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수를 빼앗긴 나라는 교육이나 의료, 빈곤 퇴치 프로그램,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에 쓸 수 있는 돈이 적어질 것이다. 이런 일은 허락돼서는 안 된다. 다국적 기업이 세금을 낮춰주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떠나겠다고 위협하면서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것도 멈춰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기업이 어디에서 사업을 하든 공정하게 같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인세 인하 경쟁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적인 협력이다. 3년 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G20 정상회의는 ‘국가 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 잠식(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뎠었다. 이 프로젝트는 다국적 기업의 이윤과 세금 납부에 대한 내용을 관련 국가들에 모두 보고하고, 국가들 간 세금 정보 교환을 쉽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5년 G20 정상회의에서 프로젝트 최종 승인이 떨어지면서 2020년까지 제도 개선 등 여러 과제를 수행한다.


다국적 기업은 단일 회사로 보고 과세해야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도 한계가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이 프로젝트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에서 핵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이전가격 조작은 다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여전히 세율이 낮은 조세회피처에 자신들의 이익을 숨길 수 있다.

내가 의장으로 있는 ‘다국적 기업 조세 개혁을 위한 독립위원회(The Independent Commission for the Reform of International Corporate Taxation)’는 이런 문제를 고칠 수 있는 대안들을 찾아봤다. 최근 한 보고서를 근거로, 우리는 기업 이윤에 대한 세금을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거둬들이는 방법이 다국적 기업을 ‘국경을 넘어 사업을 하는 단일 회사’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게 하면, 다국적 기업이라 해도 실제 경제 활동을 반영하는 매출, 고용, 자원 사용과 같은 요인을 바탕으로 각각의 지역에서 세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공교롭게도 유럽연합(EU)이 현재 비슷한 방법의 과세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EU 국경 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모든 다국적 기업을 각각 하나의 기업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분명히 하자면,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각국 정부는 투자와 기업 유치를 위해 법인세 인하 경쟁을 펼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국가들이 법인세 최저세율을 15~25%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동의해야만 과도한 조세 인하 경쟁으로 인한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도상국들의 참여도 필수적이다. 개발도상국은 지역적인 단위에서부터 법인세 최저세율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 브라질처럼 과세최저한도를 설정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국제연합(UN)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직 국제적 협력에 바탕한 진정한 노력만이 지금의 망가진 시스템을 고치고, 세금을 내리기 위한 파괴적인 경쟁을 완전하게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Jose Antonio Ocampo)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사무차장, 유엔 중남미·카리브 경제위원회 사무총장, 콜롬비아 재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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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가격(transfer pricing) 기업 간에 원재료와 제품·용역을 공급할 때 적용되는 가격을 말한다. 다국적 기업은 법인세율이 낮은 지역의 계열사에 상품을 공급할 때 이전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반대로 상품을 공급받을 때는 높게 책정해서 법인세율이 낮은 지역으로 이익이 더 많이 돌아가도록 이전가격을 조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가격 조작으로 세금을 회피하는 다국적 기업이 늘면서 국제적인 문제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