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hey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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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당시 최중경 기획재정부 제1차관의 발언이 관가(官街)와 정계(政界)를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정부가 추경을 추진하자 정치권에서 “추경을 통한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부적절하다”고 제동을 건 상황에서 최 차관은 “모든 경기부양은 다 인위적인 것”이라고 받아쳤다. 세금으로 경기 끌어올린다는 뜻이 담겨있는 ‘인위적 경기부양’이라는 단어는 경제 부처에서는 ‘금기어’라고 할 정도인데, ‘최틀러(최중경+히틀러)’라는 별명답게 직선적인 발언을 했다. 대부분의 경제 관료들은 경기부양이라는 단어를 피해가려고 경기 진작이나 경기 활성화라는 표현을 쓰거나, ‘거시경제 리밸런싱(Rebalancing·재조정)’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하는데 “인위적으로 경기부양하겠다”고 하니 입이 딱 벌어질 만했다.

추경은 경기 후퇴를 막기 위한 비상수단이라고 하지만, 역대 정부는 하나같이 경기부양을 위해 ‘조자룡 헌 칼 휘두르는 듯’ 추경을 해왔다. 추경으로 경기 살리는 단기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 체질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2000년 이후 추경이 없었던 해는 2007·2010·2011·2012·2014년 등 5년에 불과하다. 결국 세금 풀어 성장률과 취업률을 높이려는 목적이었다.


세금으로 다 하려고 하는 정부

정부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추경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양이다. 지난달 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자들과 만나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일자리 11만개를 만들겠다면서 11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했는데, 올해도 일자리라는 명분을 내걸고 추경에 나설 모양이다.

추경은 정부 멋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재정법에 추경을 편성할 수 있는 요건들이 규정돼 있다.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발생, 경기침체·대량실업·남북관계의 변화 등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만 가능하다. 정부는 대량실업 발생 우려를 이유로 삼을 듯하지만,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연간 성장률이 3%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어색한 측면이 있다. 게다가 추경 편성 시점이 1분기(1~3월)라 지나친 ‘조기 추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2조원을 쏟아붓고도 살리지 못한 성동조선과 STX조선이 법정관리와 감원에 들어가고, 한국GM 군산공장이 예정대로 5월에 폐쇄되고, 금호타이어 해외 매각에 대한 노조의 반대가 거세져 법정관리로 넘어간다면 일자리에 찬바람이 불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감소도 문제일 수 있다.

그렇다고 번번이 추경으로, 언 발에 오줌 누기식으로 경제를 끌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작년 말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불과 3개월이 안 돼서 추경을 한다면 정부 예산안이 어딘가 잘못돼 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추경 중독(中毒)’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세금 더 걷어 일 많이 하겠다고 ‘큰 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지만, 3월도 지나가기 전에 추경 편성하겠다는 말이 쑥스럽긴 한 듯 싶다. 정부는 “올해 일자리 추경은 규모를 줄여서 효과적으로 집행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한다. 적자 국채 발행하지 않고, 재정건전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추경 규모는 예년의 절반 수준에 못 미치는 4조원 안팎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대신, 각종 기금 지출을 20% 늘리고, 세제 혜택 확대에 공기업 지출을 늘리고 국책 금융기관의 보증을 통한 지원을 늘리는 조치들을 더해서 체감하는 정책 효과는 10조원대로 만들겠다고 한다. 세금으로 경기도 살리고,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규제 풀고 기업들을 춤추게 만들 방법을 쓰면 일자리는 저절로 늘어난다. “일자리를 민간이 만든다는 건 고정관념”이라고 억지를 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