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미국이 3월 말까지 내놓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지원 법안 3개를 합치면 총규모는 약 2조3133억달러(2822조원)로 추산된다. 가장 강력한 것은 3월 27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2조2000억달러(약 2700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 패키지 법안이다. 이 법안에 따라 최대 1200달러를 주는 현금 지급 프로그램에 2900억달러, 소상공인 신규 대출 지원에 3490억달러, 기업 대출 및 대출 보증에 5000억달러 등이 투입된다. 이보다 앞서 1차 예산으로 83억달러가 배정됐고 뒤이은 확진자 지원안 규모도 1050억달러가량으로 추산된다. 미국 의회와 정부 관료, 각계 전문가들은 세 차례의 기존 부양책보다 더 큰 규모의 긴급 추가 대책 패키지 법안을 준비 중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예약한 경제학자’로 불리며, 정부 개입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매파(강경파)’로 분류되는 존 테일러 교수는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명확한 ‘전략’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자리 관련 규제를 풀고 세금을 동결하는 등 친(親)시장 정책을 펼쳐 시장 거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 테일러(John B. Taylor)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위원, 몽페를랭회(會) 회장, 미국 재무차관
존 테일러(John B. Taylor)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위원, 몽페를랭회(會) 회장, 미국 재무차관

미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보다 명확한 경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번 위기는 여러 측면에서 독특하지만, 2001년 9·11 테러 사건에 뒤따랐던 경제 정책의 접근법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기습 공격은 경제 전체를 위협했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했다. 우선 과제는 경제 성장에 필요한 상호 관계와 재정 흐름, 그리고 경제 활동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알 카에다와 협력자들의 돈줄을 끊는 일이었다. 경제 침체는 없었고 ① 9·11 위원회는 이후 경제 정책 대응 평가에서 ‘A’ 등급을 받았다.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전략이 당면한 경제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해당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장·단기 정책과 함께 그 정책이 어떻게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끝으로 정부와 민간, 그리고 동맹국의 관련 부처를 대상으로 한 가이드라인도 포함해야 한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자가 격리 의무, 사회적 거리 두기, 직장 폐쇄, 여행 금지와 같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물리적 노력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미 연방정부와 캘리포니아, 뉴욕, 워싱턴을 포함한 많은 주 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상업 활동을 제한하자 그러한 ‘처방’이 바이러스보다 더 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시장과 경제를 위협하는 것은 감염을 막는 조치뿐만이 아니다. 현재 논의 중인 많은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가령, 가계에 지급하는 일회성 지원금은 인도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시장을 개방하지도 기업 고용의 동기를 부여하지도 못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환급금 지급 정책 등 과거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한 방식의 부양책은 실제로 경기 부양 효과를 내지 못한다.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받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 돈을 쓰기보다는 저축하려 할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가계와 기업의 신용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비상기구를 신설한 것이나 민간 부문에서 의료 시설 확충과 보호장비 생산이 이뤄진 점은 분명 시장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자유 시장 정책에는 호의적이지 않다.

더 중요한 점은 미국이 명확한 전략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근에 이어진 단편적인 대응책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3월 16일(현지시각) 코로나19 사태에 맞서 ② ‘확산 속도를 늦추는 15일’의 공식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미국은 곧 시장을 압도할 만한 경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시장 개방 정책이 건전한 공중 보건 정책과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 연방정부는 경제 활동을 억제하기보다 더 많은 시장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지금은 고가의 러닝머신을 사거나 가정용 컴퓨터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기 좋은 때다. 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미 연방항공청(FAA)은 배달용 드론 사용과 관련된 규제를 풀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27일(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2조2000억달러(약 2700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 패키지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27일(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2조2000억달러(약 2700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 패키지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규제 풀고 시장 활성화해야”

이번 위기는 규제 개혁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를 폐지 또는 중단하고 고용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는 신설 규제의 시행을 연기해야 한다. 그중 하나는 1920년에 제정된 상선(商船)법이다. 이 법은 미국인이 소유하고 미국에서 건조한 선박만 운항을 허용하면서 미국 항만 사이의 화물 수송을 제한했다. 이 법을 없애면 운송 비용은 줄어들고 더 많은 유통 경로가 열릴 것이다. 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자는 요구가 많았다. 이는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대응과 경제 성장 도모라는 취지와도 부합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직업 면허 제도의 폐지는 오랫동안 닫혔던 노동 시장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면허라는 불필요한 ‘감염병’은 몇 년 새 꽃집과 관광 가이드, 실내장식업까지 퍼졌다. 이는 당파적 문제가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는 면허 발급 요건이 까다로워지자 “재화와 서비스 가격을 높이고, 고용 기회를 줄이며, 근로자들이 자신의 기술을 가지고 다른 주로 이동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미 의회는 가까운 미래에 세금 인상은 없다는 초당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그 약속만으로도 실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이미 일각에서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특히 환영받을 것이다. 경제 정책 대응으로 인한 재정 적자가 커지기 시작하면 세금을 인상하라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요약하자면,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경제 문제는 팬데믹 대응책이 시장을 개방하기보다는 제한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몇 주 안에 규제를 풀라는 압박이 커지겠지만, 그것보다는 공중 보건 정책과 조화로운 시장 개방 조치를 적극적으로 내놓는 전략이 낫다. 미국은 일자리를 파괴하는 규제를 풀고 성장을 억압하는 세금 인상을 피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Tip

정식 명칭은 미국을 향한 테러에 대한 조사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 2002년 11월 17일 결성됐다. 목적은 9·11 테러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조사하고 준비 과정을 분석, 차후 테러에 대한 대비 및 즉각적 조치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당시 뉴저지 주지사 토머스 킨과 여야에서 각각 5명씩을 지명해 동수로 구성했으며, 소속 정당과 정부에서 독립된 조사 활동이 가능했다. 위원회는 2년간 활동하면서 1200명의 증인과 만났으며 250만 쪽에 달하는 자료를 검토했다. 2004년 8월 21일 50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뒤 해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16일(현지시각)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속도로 확산하자 10명 이상 모임 회피, 불필요한 여행 자제 등의 내용이 담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이를 15일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3월 29일 이 가이드라인 적용 기한을 4월 말로 한 달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애초 보름간 설정했던 지침의 만료 기간인 3월 30일이 다가오면서 4월 12일 부활절까지 미국의 경제 활동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꾸준히 피력했지만, 결국 보건 전문가들의 반발에 부딪혀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에 참여하는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미국이 수백만 명의 감염자와 10만∼2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태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