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4월초 노사정은 작년에 중단됐던 대화를 재개하면서 현안인 비정규직 법안 문제를 국회에서 논의키로 합의했다.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진행된 11차례의 밤샘 논의 과정에서 경영계는 대승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노동계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만 되풀이하면서 회의는 계속 공전됐다. 그 결과 아쉽게도 노사는 입장 차이만 확인하면서 노사정이 대화의 장에서 함께 고민했다는 것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정부가 비정규직 법안을 제출한 이후 경영계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정부 법안이 기업의 효율적인 인력 운용을 어렵게 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논의의 장기화는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데다 산업 현장의 노사관계 불안정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 경영계는 국가의 경제·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 법안 수준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자세로 노사정 대화에 임했다.

 노동계는 파업을 앞세우면서 자신들의 요구 사항 관철 이외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경직적인 태도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논의 진척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 협상의 무산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바로 정부 법안에서 보호하려고 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와 파견근로자 등 비정규직과 일자리가 필요한 실업자들이다.

 정부 법안대로 사용 사유의 제한을 받지 않는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기간을 최대 3년으로 제한할 경우 정부 통계에 따르면 작년 8월 현재 해당 근로자 수가 74만명으로 이 중 최소 50%만 계약 해지돼도 37만명의 신규 실업자가 발생하게 된다.

 만일 현실을 무시한 노동계의 무리한 주장대로 사용 기간을 최대 1년으로 제한할 경우 해당 근로자 수가 163만명으로 82만명, 최대 2년으로 하더라도 해당 근로자 수가 104만명으로 52만명의 신규 실업자가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기간제 근로자만 보더라도 정부 법안대로 시행될 경우 상당수의 실업자가 당장 발생할 수 있는데 노동계 주장대로 사용 기간을 더 단축한다면 그나마 현재 있는 일자리마저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고, 무엇보다 실업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노동시장 상황에서 그 부작용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든지 예상할 수 있다.

 이제 노동계는 고용 형태 다양화 자체를 더 이상 거부할 게 아니라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에서 보다 좋은 자리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도록 노동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협조해야 한다. 산업 현장을 이제 더 이상 갈등과 한을 만들어내는 불안정한 소용돌이로 내몰아선 안될 것이다.

 비정규직이 우리나라의 일자리 창출과 실업 흡수를 위한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노사 상생의 현실적 해법을 찾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경영계도 불합리한 차별이 있다면 기업 스스로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 전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노동시장은 청년 실업 급증과 생산 인력 고령화란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노동계는 현재의 과도한 정규직 보호법 체계에서 더 나아가 정규직만의 고용 형태를 요구하는 법제 논의가 우리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냉철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 근로자도 세계 노동시장에서 살아 남는 길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란 것을 하루 속히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영계는 든든한 후원자가 될 준비가 이미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