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권용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뉴욕에 사는 대니얼은 퇴근 후에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다가 주식 투자 앱인 ‘로빈후드’를 켰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햄버거 브랜드인 ‘쉐이크쉑’의 전망이 좋다고 이야기해서다. 쉐이크쉑이 맛도 좋고 세계적으로 매장을 늘리는 추세에 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니얼은 로빈후드를 통해 쉐이크쉑 주식 3주를 샀다. 대니얼은 매달 100달러씩 로빈후드에 자동이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주식을 매입할 자금은 충분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맥줏값을 나눠낸 뒤에 남은 잔액은 ‘에이콘(Acorn)’이라는 소액투자 서비스에 넣었다. 에이콘은 소액 투자자를 모아서 채권과 펀드를 자동으로 골라서 투자해주는 서비스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대니얼은 자신의 퇴직연금인 ‘401k’가 투자할 곳을 ‘뱅가드 정보기술(IT) 중견기업’으로 바꿨다. 월스트리트에서 나오는 소식과 경제 매체들의 뉴스를 종합한 결과 IT 중견기업의 미래가 밝다고 본 것이다.

금융 선진국에서는 평범한 직장인들도 금융 상품이나 투자 포트폴리오에 익숙하다. 레버리지(돈을 빌려서 자산을 매입하는 투자전략)나 현금 흐름이라는 용어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다. 대니얼은 호텔 체인에 갓 입사한 사회초년병이지만 다양한 금융 상품과 투자 서비스를 익숙하게 활용한다. 

대니얼 같은 미국의 젊은 직장인들은 소셜미디어를 하듯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투자 기업의 매출과 성과를 평가하고, 기업의 주식을 사는 일이 출근길에 커피를 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뉴욕의 물가나 월세는 살인적인 수준이지만, 젊은 직장인들은 금융 투자를 통해 기업이 성장하면서 남기는 과실을 함께 나눌 수 있고, 덕분에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한 자산도 축적할 수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어릴 때부터 경제나 금융에 대한 교육을 받은 덕분에 투자가 생활의 일부분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직장인들에게 투자는 생활이고 삶의 일부다. 앞서 소개한 로빈후드 앱을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수수료 없이 주식을 한 주 단위로도 살 수 있다. 기업의 매출, 서비스,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대학생도 큰 어려움 없이 자신이 관심을 갖는 기업의 주식을 살 수 있다.

이렇게 투자의 장벽을 허물면 투자를 쉽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포트폴리오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한두 개의 투자 상품에 모든 자금을 넣는 ‘몰빵’을 하기 쉽다. 주가가 조금만 오르거나 내려도 주식을 사고파는 단타 거래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경험을 하게 되면 자산 관리나 투자에 대해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미국 기업이 신입 사원에게 한두 주라도 스톡옵션을 주는 것도 투자에 대한 장벽을 허무는 효과가 있다. 스톡옵션을 받은 직장인은 회사의 성장이나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일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퇴사 이후에도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바탕이 된다.

미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금융 선진국에서는 암호화폐 투기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가 한국보다 적다. 평범한 직장인 한 명 한 명이 금융과 투자에 대해 확실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리한 투자가 얼마나 큰 손실로 이어질지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최근 한국의 경기는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실업률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고,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외식비와 생활비는 천정부지로 매년 오르기만 한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리고 부동산 가격 규제 정책을 내놓으며 문제를 고치려고 하지만, 서민과 청년의 삶은 어려워지기만 한다. 급기야 많은 사람이 암호화폐나 장외 주식처럼 변동성이 큰 자산에 투자를 하다가 큰 손실을 입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에서 뒤늦게 이런 투자 상품 규제에 나서기라도 하면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이 거세게 이어지기도 한다.

청년들만 힘든 것도 아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노후 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아서 은퇴 이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전체 노인 인구의 42.7%에 달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여러 원인을 짚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금융투자에 대한 교육이 부재한 점이다.


노동과 이자 수익만으로 부자 못돼

과거 두 자릿수 성장률을 달리던 시기에는 ‘저축과 적은 부채, 낮은 리스크, 안정적인 직장’이 자산 관리의 모토였다. 이때는 부(富)라는 개념 자체가 금기시됐다. ‘돈 놓고는 못 웃어도 아이 놓고는 웃는다’ ‘돈 모아 줄 생각 말고 자식 글 가르쳐라’같이 부를 쌓는 걸 좋지 않게 여기는 속담과 격언도 많았다. 돈 모으는 법을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은 일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주식이라는 단어는 도박이나 빚더미와 연관해서 생각했고, 부동산이라는 단어에 투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문제는 이런 사고방식이 저성장·저금리가 당연해진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가상승률이 3%를 넘는데 은행 적금 금리는 2%대를 맴돈다. 이런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성실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미덕처럼 여기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오히려 돈을 잃는 시대인데 말이다. 한국의 20~30대 가운데 투자 경험이 있는 사람은 28%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꾸준하게 투자를 하는 경우는 7%에 불과했다.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투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수적인 행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고 개인은 노동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노동으로 얻는 수익이 늘 기업이 만들어낸 가치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격차는 커지게 되고 노동 수익에 기대는 사람은 더 빈곤해진다. 물가 상승이라는 건 결국 전체 사회가 창출한 가치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 수익의 증가율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갈 수 없는 게 자명한 일이다.

투자는 기업이 만들어낸 가치의 일부를 개인이 소유한다는 의미다. 기업의 이익 중 일부를 배당받을 수도 있고, 기업이 좋은 제품을 만들거나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면 그로 인한 이익의 일부를 얻을 수도 있다. 몇몇 부자들이나 투기꾼만 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이나 사회초년병이 오히려 더 열심히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투자를 하지 않고 노동 수익과 은행 이자만으로 살겠다는 건 씨앗을 산 뒤 심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누구나 씨앗을 살 수 있지만, 모두가 씨앗을 심는 건 아니다. 둘의 차이는 시간이 가르쳐준다. 씨앗을 심은 사람은 열매를 얻고 또 다른 씨앗도 손에 쥘 수 있다. 씨앗을 심지 않은 사람은 썩은 씨앗만 손에 쥔 채 가만히 있어야 한다.

최근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할 여러 정책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제와 투자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씨앗만 나눠주고 물을 주는 법이나 수확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반인들의 투자가 활성화돼야 다양한 금융 상품이 나타날 수 있고, 이를 통해 국내 금융시장도 더 발전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급급하기보다 금융이나 투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개선하는 게 더 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