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올여름 폭염과 함께 세간의 화제가 됐던 건 독일 자동차 BMW에서 꼬리를 물고 발생한 화재다. 올 들어 40대 넘게 불이 났다. ‘7000만원짜리 불자동차’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BMW의 굴욕이라고 할 만하다. 국토교통부 요구로 10만 대 넘게 리콜하게 됐고, 안전점검을 받지 않은 차량은 운행할 수 없게 됐다.

화재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BMW 측에서 원인으로 지목한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 부품의 설계나 재질 결함 외에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EGR 부품의 냉각수가 새면서 뜨거운 배기가스에 불이 붙어 불이 났다고 추정했는데, 엔진 소프트웨어 조작 가능성 등이 또 다른 화재 원인으로 거론된다. 폭염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올 지경이다. 올해 전국 평균 폭염 일수는 26.1일로, 가장 무더웠던 해라고 했던 1994년(25.5일)을 넘어섰다. 폭염은 낮 최고기온이 33도 이상 유지되는 날씨다.

BMW 측이 이미 2년 전쯤부터 비슷한 화재가 자꾸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발적 리콜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말도 나온다. 천하의 BMW가 이런 지적과 의심을 받는 처지로 몰렸다.


리콜 숨기고, 늦을수록 역풍 거세

리콜은 즉각적이고 공개적으로 단행해야 한다. 그래야 브랜드 가치를 지킬 수 있다. 1990년 프랑스 ‘페리에’ 생수에서 유독 물질인 벤젠이 다량 검출된 적이 있었다. 페리에는 철저히 감추고 비밀리에 리콜을 단행했다. 페리에는 사건 발생 후 불과 일주일 동안 전 세계에 걸쳐 1억6000만 병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결국 언론이 알게 됐다. ‘자연의 순수함’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던 페리에는 코너에 몰렸다. 즉각적인 리콜을 단행하긴 했지만, 소비자에게 숨겼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소비자의 분노와 의심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 사건이 경쟁사인 네슬레가 약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런 일도 있었다. 1986년 세계적인 유아식품 제조회사 ‘거버’는 유아식에서 유리 조각이 발견됐다는 보고가 미국 전역에서 200건이 넘게 접수됐지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제조 과정 잘못이라는 증거가 없어 리콜이 지연되자 메릴랜드주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전면 판매 금지 조치를 내렸다. 거버는 “섣불리 리콜하면 불안감만 키울 수 있다”면서 메릴랜드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다. ‘거버’가 이겼고 리콜은 실시되지 않았다. 소송에서 승소해 리콜 비용을 아낄 수 있었지만,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고 브랜드 가치는 추락했다. 더 적극적으로 리콜에 나섰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올 들어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고, 저소득층 소득이 줄어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최저임금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 근로시간 주 52시간 단축 과속 등 정부 경제 정책도 리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통째로 리콜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우스갯소리라지만 뼈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5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보낸 영상 축사에서 “우리는 올바른 경제 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했다. 리콜은 없다고 한 셈이다. 하지만 고용 상황 악화 등을 다 가릴 수는 없었는지 “청년과 취약계층의 일자리, 소득의 양극화 심화, 노후 빈곤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애초에 그런 문제를 풀어낼 특단의 대책이라면서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소득 주도 성장을 추진했는데, 역설적으로 그 부분이 더 곪아간다. 그래도 청와대는 리콜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다음 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술 더 떴다. “최근 악화된 고용·가계소득 지표는 소득 주도 성장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역설하고 있다”고 했다. 리콜이 필요한데, 청와대는 ‘마이 웨이(my way)’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