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권용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응용수학,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파생상품팀 초단타 퀀트 트레이더,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저자

2년 전,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승부에서 알파고의 승리 때문에 온 세상이 들썩였다. 인공지능을 연구했던 필자조차도 알파고보다는 이세돌의 승리를 점쳤다. 알파고의 승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구글의 주가는 단번에 10%가 상승했고 이는 기업 가치를 무려 58조원이나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지고 그에 따른 많은 투자와 교육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마냥 즐거운 반응만 있던 것은 아니다. 인류의 멸망을 점치거나, 기계가 세상을 지배하는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등을 상상하는 사람도 있었고 로봇으로 대체되는 직업들을 꼽으며 불안에 떠는 사람도 많았다. 인공지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찬양자도 종종 보였다.

레이 커즈와일의 책 제목인 ‘특이점이 온다’라는 문구가 최근 여러 매체에서 유행한다. 특이점(Singularity)이란 인공지능이 인류의 지능을 넘어서는 시점으로, 기술이 기술을 발전시킬 때를 말한다. 이때가 되면 기계가 기계를 설계하고 만들면서 기술 발전 속도가 무한대에 가까워진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인류가 멸망하거나 기계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알파고의 승리와 더불어 더욱 주목받는 책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이를 지나친 기우라고 이야기한다. 필자의 생각도 비슷한데, 이는 원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기계의 학습’ ‘인공 신경망’ ‘인공지능’ 등과 같은 단어를 들었을 때의 위화감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머신러닝의 원리를 알아보고 이런 오해를 풀어보자.

초창기에 인공지능은 일일이 조건을 하나씩 프로그래밍해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조건을 이렇게 일일이 추가할 수도 없고 정확도도 떨어졌다. 컴퓨터의 성능이 점점 좋아지면서 조건을 하나하나 추가하는 대신에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체크해보고 그중에서 최선의 결과를 선택하는 방식이 나타나게 된다. 세계 체스 챔피언이 패배해서 큰 충격을 주었던 1997 IBM의 수퍼컴퓨터 인공지능 ‘딥블루’ 또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프로그램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먼저 답이 없는 문제는 풀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은 경우에는 이 방법을 쓸 수가 없었다. 이미지·음성 인식, 번역 등이 이런 종류의 문제다. 만약 고양이 사진을 구분하는 인공지능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털이 있고 다리가 네 개면 고양이일까? 같은 고양이라도 자세나 사진 각도가 제각각일 것이다. 프로그램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체크할 수 있을까?

컴퓨터로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없는데 인간은 대체 어떻게 인지하는 걸까? 과학자들은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않고 답이 없는 문제도 쉽게 판단하는 인간 뇌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자극과 그에 따른 뇌의 반응을 관찰하며 연구한 끝에 뇌에 있는 세포인 뉴런이 촘촘히 망을 형성해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사실을 밝히게 됐다.

이 뉴런은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일정 수치(역치)를 넘어서면 화학 신호를 시냅스를 통해 다음 뉴런에 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다음 뉴런이 이전 뉴런에 받은 신호들을 합쳐서 역치 이상이면 또다시 다음 뉴런에 보내게 된다. 뉴런마다 역치가 다르기 때문에 이는 정보가 되고 이러한 프로세스를 통해서 결국 마지막에 나온 결과를 통해 판단하게 된다.

이런 뉴런 구조에 영감을 받은 과학자들은 1940년쯤에 뉴런과 비슷한 구조로 작동하는 인공신경망이라는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인공신경망은 기존의 데이터를 이용해서 가중치를 수정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찾는 단계(학습)를 거쳐 프로그래머가 직접 수정하지 않고도 데이터를 인식하고 판별할 수 있다. 

1997년 5월 11일 IBM의 수퍼컴퓨터 ‘딥 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다. 6번의 대국에서 2승1패3무를 기록해 정식 체스 경기에서 챔피언을 꺾은 최초의 컴퓨터가 됐다. 이 경기를 보고 있는 관중. 사진 미 IT매체 Mashable
1997년 5월 11일 IBM의 수퍼컴퓨터 ‘딥 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다. 6번의 대국에서 2승1패3무를 기록해 정식 체스 경기에서 챔피언을 꺾은 최초의 컴퓨터가 됐다. 이 경기를 보고 있는 관중. 사진 미 IT매체 Mashable

“AI는 데이터 예측할 뿐”

정리하자면, 인공지능은 정교하게 데이터를 분류하고 예측해주는 프로그램일 뿐이다. 기존의 데이터(=경험)를 이용해서 분류할 때 이용하는 가중치를 업데이트하고(=학습) 이를 이용해서 데이터를 분석한다. 이는 에니악(ENIAC)이 최초의 컴퓨터로 등장했을 때나 인터넷이 처음 보급된 것과 같은 엄청난 기술적 혁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계가 생각하고 스스로 공부해서 진화하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 같은 형태를 상상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다.

인공지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만능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과거 데이터를 이용해서 분류나 예측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에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이나 데이터가 나타나면 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제대로 된 학습이 이뤄지려면 잘 분류된 데이터가 필요한데, 우리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데이터는 바둑판처럼 간단하지 않다.

결국 인공지능은 컴퓨터가 처음 생겼을 때와 같은 새로운 도구의 출현 쪽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많은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다. 이젠 대부분의 사람이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컴퓨터 없이는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누구나 쏟아지는 데이터를 이용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컴퓨터를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인 것처럼 인공지능과 데이터 과학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단순히 인공지능으로 인한 변화를 두려워하고 걱정하기보다는 새로운 도구와 데이터 과학의 등장에 따른 시대 변화를 준비하는 마인드를 함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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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퓨터
슈퍼컴퓨터는 초고성능컴퓨팅(HPC) 능력을 갖춘 컴퓨터를 말한다. 보통의 컴퓨터보다 연산속도가 빨라 대용량 데이터를 분석‧처리할 수 있다.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인 게리 카스파로프와의 대국에서 이긴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는 1초 동안 2억번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였다. 하지만 오늘날 최고의 슈퍼컴퓨터인 IBM 서밋(SUMMIT)의 연산속도는 122.3페타플롭스(PetaFLOPS)까지 빨라졌다. 1페타플롭스는 1초당 1000조번의 연산처리가 가능한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