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국제 사회가 인정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이 아직은 등장하지 않았다. 여전히 가장 확실한 대응책은 사회적 거리 두기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힘들지만, 덕분에 우리는 언택트(untact·비대면)의 장점을 제대로 알아가고 있다. 물리적인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비용·시간을 절감할 수 있는 효율성과 편리성이 비대면을 점차 주류 커뮤니케이션 및 거래 방식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비대면의 일상화가 가져온 변화는 금융 시장의 모습도 전과 사뭇 다르게 바꿨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시중에 유동성이 아무리 넘쳐나도 주식시장으로 신규 자금이 유입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들이닥친 올해는 주식시장의 연간 거래 대금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신규 개인 투자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주식 활동 계좌 수가 7월 27일 기준 3243만 개로 집계됐다.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왔던 1월 20일 2947만 개에서 약 200일 만에 300만 개가 늘어난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부터 7월 2일까지 국내 증시의 누적 거래 대금은 약 2294조원으로, 2019년 연간 거래 대금 2287조원을 이미 돌파했다. 재택근무 확산과 외출 자제 등에 따른 투자자의 증시 체류 시간 증가가 거래 대금 증가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올해 들어 7월 2일까지 개인 투자자의 거래 대금은 1671조원이었는데, 이는 전체 거래에서 무려 72.9%를 차지한다. 구체적으로 유가증권 시장에서 개인의 거래 비중은 60.5%, 코스닥 시장에서는 86.9%다. 대부분의 개인이 비대면 거래로 주식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물론 금융 투자 업계의 비대면 서비스가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증권사의 비대면 계좌 개설은 2016년 3월 금융 당국이 허용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증가 추세다. 코로나19가 비대면 거래 급증의 배경이 된 셈이다. 대형 증권사의 경우 비대면 서비스의 하루 평균 약정 금액 규모가 기존 4000억원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1조원 이상으로 순식간에 불어났다. 키움증권은 일평균 신규 계좌 수가 올해 6월 기준 6383개로, 이전 대비 네 배가량 늘어났다.

반면 2010년 1790개로 정점을 찍었던 증권사들의 국내 점포 수는 현재 900개 아래로 줄어든 상태다. 비대면 거래 확산의 다른 말은 증권사 오프라인 지점의 위축이다.

눈여겨볼 건 지금부터다. 비대면 사회의 영향으로 주식시장에 개인이 대거 유입된 걸 무조건 걱정스럽게만 봐야 할까. 그렇지 않다. 그들의 주식 투자 스타일은 과거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통상 개인은 기대 수익률이 높고 리스크가 큰 종목에 베팅한다는 게 시장의 인식이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 직후 급락장에서 개인 투자자의 순매수 상위 종목은 모두 시가총액 상위의 대형주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과거에는 각종 서적이나 증권 방송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차트 분석 위주의 피상적인 주식 투자 방식이 인기를 끌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관심 종목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개인이 부쩍 늘었다. 개인을 이리저리 테마주나 쫓으며 분위기에 휩쓸리는 뜨내기로 치부하기엔 우리 자본시장이 꽤 성숙했다는 이야기다. 대형 증권사를 포함한 전통 금융권도 유튜브 같은 온라인 채널을 통해 비대면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개인 투자자의 학습 욕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분위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식시장의 전체 신용융자 잔고는 7월 10일 기준 13조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6조원 수준까지 줄어들었던 잔고가 탄력을 얻어 대폭 증가한 것이다. 신용융자 잔고가 늘어난다는 건 향후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는 투자자가 많다는 의미다. 개인 투자자는 점점 더 다양한 금융 상품으로 유입될 것이다.


최근 들어 관심 종목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개인 투자자가 부쩍 늘었다.
최근 들어 관심 종목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개인 투자자가 부쩍 늘었다.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이처럼 코로나19가 낳은 비대면 시대는 개인 투자자 저변을 비약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외국인 투자자 수급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한국 증시가 새 국면을 맞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금융 당국과 업계 관계자 모두 코로나19 위기를 최고의 기회로 바꾼다는 마음가짐으로 국내 증시의 양적·질적 성장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국내외 금융 시장이 돌아가는 분위기부터 직시해야 한다. 일단 비대면 시대의 금융 상품은 종류가 다양해지고 판매 경쟁도 점점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기존 금융 회사와 핀테크 기업은 물론 플랫폼 기업까지 비대면 금융 서비스에 진출하고 있어서다.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 등의 글로벌 정보기술(IT) 회사가 이미 지급·결제, 자산 관리, 신용, 대출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 분야에 뛰어들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IT 플랫폼 기업이 네이버파이낸셜과 카카오페이증권 등의 금융 플랫폼 영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들 기업 덕에 금융 상품 분야에서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새로운 디지털 혁신에 따른 프로세스와 제품의 변화)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증시에 대거 유입된 ‘제법 똑똑한’ 개인들은 앞으로 디지털이 가미된 비대면 금융 서비스 경험을 꾸준히 축적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치는 낡은 금융 규제와 관행을 무너뜨리는 힘으로 작용하고, 궁극적으로는 한국 금융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멋진 선순환 구조가 꼭 완성되기를, 한없이 길어지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