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유럽투자은행(EIB)은 6월 말 ‘여성 기업가에게 투자하라’는 제목의 자문 보고서에서 “전 세계 보건 및 사회 부문 인력의 70%를 차지하는 여성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전쟁에서 앞장서고 있다”며 “여성이 사태 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여성 주도 기업이 더 생산적이며 빠르게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복을 가속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코로나19 사태와 이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극복하는 데 여성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불가리아 출신의 EIB 부총재 릴리아나 파블로바는 여성 주도 기업의 성과에도 여성이 지닌 위험 회피 성향, 남성이 가진 성적 편향 등으로 여성이 이끄는 기업 투자가 확대되지 못하는 ‘악의 순환고리’가 형성돼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코로나19 위기가 양성 친화적 혁신에 드라이브를 걸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양성평등을 위해 개인의 태도는 물론 기업 문화 제도 등의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릴리아나 파블로바(Lilyana Pavlova)전 불가리아 지역개발공공사업부 장관, 현 유럽투자은행 부총재
릴리아나 파블로바(Lilyana Pavlova)
전 불가리아 지역개발공공사업부 장관, 현 유럽투자은행 부총재

만약 당신이 벤처 투자가라면 남성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여성이 이끄는 기업에 투자하는 일이 시장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릴 기회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이름을 붙이자면 ① ‘셰르셰 라 팜므(cherchez la femme·여자를 찾으라)’ 법칙은 경험 법칙으로 벤처캐피털의 복잡한 투자 결정 과정을 단순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나 ② 벤처캐피털 업계 임원 중 91%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이 이끄는 기업의 실적은 주목받지 못했다.

유럽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여성 주도 기업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투자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여성이 직장을 떠나면서 연간 약 162억유로(약 22조6100억원) 규모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유럽 전체 인구 중 52%가 여성이다. 하지만 유럽 전체 자영업자와 스타트업 창업자 중 여성은 각각 34%, 30%에 그쳤다. 게다가 벤처캐피털이 2017년 유럽에 투자한 금액 중 여성 주도 ICT 기업의 몫은 단 10%에 불과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여성 창업자가 어느 정도는 위험 회피 성향을 지니며 외부 금융(external financing·투자나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외부에서 차입하여 조달하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덜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럽에서 창업하는 여성은 외부 금융 기회가 있더라도 스스로 상당한 수준의 자금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성 창업자는 남성보다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유치할 가능성이 작다. 여성 기업인은 남성보다 적을 뿐 아니라 부트스트래핑(bootstrapping·개인 자금을 사용해 투자나 창업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는 유럽 전반의 외부 금융 수요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벤처캐피털 5곳 중 4곳은 고위 투자역에 여성을 고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신입사원 중 여성은 10명 중 단 1명꼴이었다.

여성이 지닌 위험 회피 성향, 남성이 가진 성적 편향, 롤모델로서 여성 투자가나 창업가의 부재 등이 총체적으로 악의 순환고리를 만들었고 그것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여성 기업가가 ③ 혁신과 일자리 창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한다면 악의 순환고리를 깨뜨릴 수 있다. 여성 주도 기업은 남성보다 후기 단계(later stage·매출이 늘고 이익이 나는 단계)에서 더 많은 투자를 유치했다. 또한 매출 중앙값이 시장을 웃돌고, 다른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더 컸다. 이는 6월 말 발표된 유럽투자은행(EIB)의 자문 보고서 내용의 일부에 불과하다.

실제로 EIB 조사 결과, 유럽에서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는 여성 주도 기업은 투자금 회수율이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 안정적으로 매출을 내는 여성 주도 기업의 경우 여성을 더 많이 고용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여성이 창업했거나 임원으로 있는 기업에 대한 투자 확대에 기여했다. 유럽의 주요 벤처캐피털은 평균보다 큰 폭으로 여성 주도 기업에 대한 투자액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전 세계적 위협에 타격을 입은 시장과 경제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여성 기업가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여성 기업가에 대한 투자 필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전 세계적 위협에 타격을 입은 시장과 경제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여성 기업가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여성 기업가에 대한 투자 필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전 세계적 위협에 타격을 입은 시장과 경제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여성 기업가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여성 기업가에 대한 투자 필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이번 위기는 양성 친화적 혁신에 드라이브를 걸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양성평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태도를 비롯해 기업 문화·제도 등의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EIB 역시 성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9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 여성은 나를 포함해 단 3명뿐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EIB는 리더십 차원에서 성 균형을 확립하는 일 외에도 재정 관련 결정을 통해 지역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동등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EIB는 보호, 영향, 투자라는 3대 축을 중심으로 ‘양성평등 및 여성의 경제적 권한 강화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은 혁신적이고 급성장 중인 여성 주도 기업을 발굴해 자문, 자금 조달, 다른 시장 참여자와 연결 등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까지 스페인 카이샤 은행, 루마니아 가란티 은행, 이탈리아 유니크레디트 등 대출 기관이 참여하기로 했다.

전 세계 다른 투자 및 개발 은행도 비슷한 전략을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공공 은행과 개인 투자자 간 강력한 파트너십을 통해 벤처캐피털이나 다른 금융기관이 이전보다 성 균형 잡힌 접근법을 채택하도록 장려할 수 있다.

여성 주도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은 궁극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사회 공동의 번영으로 이어진다. 여성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은 윤리적, 사회적 이치에 맞을 뿐 아니라 사업에도 득이 된다.


Tip

프랑스 속담으로,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여자가 있다는 뜻이다.

2018년 5월 미국 매체 악시오스가 투자정보 업체 피치북데이터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미국 벤처캐피털 업계의 의사결정권자 중 여성은 9%였다. 그러나 이 수치는 이전보다 개선된 것이었다. 의사결정권자 중 여성 비중은 2016년 5.7%, 2017년 7%였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따르면 경제적 양성평등을 강화함으로써 2025년까지 105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최대 3조1500억유로(약 4397조18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