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나 금융, 규제 등의 정책 수단을 통한 정부의 시장 개입 타당성은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라 불리는 시장의 효율적 자원 배분 기능이 훼손돼 이를 수정할 필요가 있을 때만 인정된다. 다시 말해 시장의 실패로 발생하는 불경기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의 피해를 막아 시장이 안정화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정부의 정책 개입은 언제든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정책 개입이 항상 바람직한 결과만을 가져온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부의 정책 개입은 의도된 효과는 물론 정부와 다른 경제 주체들의 미래 행동에 영향을 미쳐 정책 개입 당시 고려됐던 경제모델의 구조적 변화를 유발함으로써 시장의 안정은커녕 오히려 불안정성만 더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진 경제 주체들, 급증한 정보, 다원화된 의사결정 과정 등을 고려해보면 정책 결과에 대한 예측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의 크기는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라는 불평도 종종 나온다.

이처럼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정부는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인 루카스의 이름을 딴 ‘루카스의 비판(Lucas critique)’인데, 7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주택임대차보호법(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가 담겨 일명 임대차 3법이라 불림) 개정안의 영향만 살펴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서민 주거를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의도처럼 임차인들도 앞으로 전·월세 가격 급등 걱정 없이 장기 거주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컸을 것이다. 하지만 늘어난 세금과 강화된 규제에 반감을 품은 임차인들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전셋값이 폭등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세가 반전세나 월세로 빠르게 전환됐을 뿐 아니라 주택 가격은 상승한 임대료만큼 오히려 더 오를 것이라는 시장 기대만 커졌다. 그야말로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정책 의도가 무색할 정도의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8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내려다 본 용산·마포구 일대. 사진 연합뉴스
8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내려다 본 용산·마포구 일대. 사진 연합뉴스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방안도 마찬가지다. 신규 공공임대주택을 늘려 그동안 공급 부족을 지적해 왔던 민심과 시장을 달래려고 했지만, 벌써 해당 지자체를 중심으로 자기 지역에는 절대로 안 된다는 ‘님비현상(NIMBY·Not in My Back Yard)’이 나타나고 있다. 아파트 재건축 시 늘어난 용적률의 절반 정도를 회수해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겠다는 방안도 사업성 저하로 재건축을 포기하는 등 정책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데도 이런 정책들이 추진돼 시장이 우려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고, 아마도 주택 보유세 강화나 주택청약제도와 임대사업자제도 개편 등의 과정에서 보았듯이 또 시장 달래기용 보완책들이 나올 것이다. 그때마다 시장의 기대는 정부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형성될 것이고 결과도 정책 수립 과정에서 예상했던 것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혹시라도 정부가 모든 경제 주체는 태생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정부의 의도대로 기대와 행동 모두 변화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반영하고 있다면, 그런 믿음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발 미련 없이 버리길 바란다.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는 명저 ‘정치학 논고’에서 “세상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칭송하면서 실제 모습에 대해서는 격노하며, 인간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론가들이나 철학자들은 통치자로서 부적합하다”고 비판한 바 있는데, 정부가 원하는 것이 그런 게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