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양승용
일러스트 : 양승용

“사랑? 웃기지 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2000년 9월부터 두 달간 KBS에서 방영된 16부작 미니시리즈 ‘가을동화’의 명장면으로는 태석(원빈)이 은서(송혜교)의 사랑을 붙잡기 위해 했던 이 대사가 꼽힌다. 이 드라마는 마지막 회 시청률이 42%를 넘겼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2002년까지 BS니혼을 비롯, CATV 등에서 방영됐고, 2004년에는 WOWOW에서 다시 방영됐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대만·태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도 방영돼 한류 열풍을 만들어냈다. 쵤영지였던 강원도 속초 아바이마을이 한류 관광지로 떠오를 정도였다.

정부의 일자리 대책을 보면 태석의 대사가 떠오른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사겠다고 한다. 태석이 실패한 것처럼 실패할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닮았다. 가난한 은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나 돈 필요해요. 얼마나 줄 수 있죠?” 이 정부는 얼마나 줄 수 있을까?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5월 취임 직후 내린 ‘1호 업무 지시’가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고용 쇼크’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세금만 퍼붓는 정부 일자리 대책

정부는 세금 쏟아붓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11조원 일자리 추경에 이어 올해도 3조8000억원 추경을 편성했다. 하지만, 지난해 추경이 만들어 낸 일자리는 허망했다. 정부는 추경 편성으로 직접 일자리 8만6000개, 간접 일자리 2만4000개 등 총 1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실제 만들어진 직접 일자리는 예상보다 2만개 정도 적은 6만7000개에 그쳤다. 정부는 ‘목표치의 82%에 달했다’고 하겠지만, 속빈 강정이다. 절반가량인 3만개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568억원을 투입해 60~65세 노년층에게 보육시설 봉사, 취약 노인 안부 확인, 노인 문화 복지 활동, 지하철 택배, 주유원, 경비 같은 아르바이트급 일자리를 만들어줬다. 산림 병해충 예찰 방제단 3000명(185억원), 기업등록부 정비 사업 1100명(63억원), 만 50세 이상 퇴직 전문 인력을 대상으로 한 사회 공헌 활동 지원 1500명(19억원) 등도 포함됐다. 이렇게 해서 작년 하반기 5개월간 추경이 집행되는 동안 노년층 1인당 지급된 돈은 월 38만원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 대책들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청년 3명을 채용하면 1명분 임금을 3년간 연 2000만원까지 ‘중소기업 청년 추가 고용 장려금’을 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9000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48억원이 책정됐다. 하지만 실제로 집행된 것은 36%(17억원)에 그쳤고, 창출된 일자리도 4396개에 그쳤다. 중소기업 청년 입사자들에게 목돈 마련을 지원해주는 ‘청년내일채움공제’는 233억원이 배정됐지만, 60%(139억원)만 집행됐다. 중소기업에 인턴으로 취업하는 청년에게 월 60만원씩 최대 3개월간 지원하는 ‘중소기업 청년 취업 인턴제’도 175억원이 추경으로 추가 편성됐는데 106억원만 집행됐다.

일부에서는 “밑 빠진 독에 세금을 부었다”고 하지만, “모래사장에 뿌려서 흔적도 없다”는 말이 더 피부에 와 닿는다. 며칠 전 국회는 3조8000억원의 추경을 통과시켰다. 추경 중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해마다 추경을 편성하지만,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당시를 제외하고는 1분기부터 추경 얘기를 꺼낸 건 올해가 처음이다.

올해는 추경(追更)에 추추경(追追更)에 추추추경(追追追更)이라도 할 모양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일자리는 시장에서 기업이 만든다. 높은 감투 쓴 경제 관료들이 모를 리가 없는데 다들 입을 다물고 있다.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일자리는 세금으로 못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