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와세다대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조선비즈·동아일보 기자, 일본 도쿄 IT 기업 근무, ‘오타쿠 진화론’ 저자
이진석 와세다대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조선비즈·동아일보 기자, 일본 도쿄 IT 기업 근무, ‘오타쿠 진화론’ 저자

 일본 이바라키현 우시쿠시의 난민 수용시설에서는 올 들어서만 최소 4명이 목숨을 끊었다. 장기 수용생활을 거쳐 끝내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수용자들이 낙담한 탓이다. 일본 법무성 자료에 따르면 난민이 수용시설에 머무르는 기간은 7년 전의 3개월 안팎에서 최근 1~2년으로, 장기화 추세다. 5년이 넘게 수용 중인 난민도 있다.

일본은 우시쿠시와 나가사키현 오무라시에 난민 수용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법무성이 불법체류 등을 이유로 강제 송환하는 외국인이나 난민 인정을 신청 중인 외국인을 임시 수용하는 시설이다. 올해 4월, 30대 인도인 남성이 자살한 후 수용자들이 단식 투쟁에 나서면서 이 시설이 세상에 알려졌다.

1만9628명 중 20명, 일본이 2017년 접수한 난민 신청자와 인정자 수다. 일본의 난민 신청자 수는 2010년 ‘아랍의 봄’과 이듬해 시리아 내전 이래 매년 폭증하고 있으나 난민으로 인정되는 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난민 인정 실무를 법무성 입국관리국이 담당한다. ‘보호’라기보다는 ‘관리’에 초점을 맞춘다. 일본에 입국한 후 수용시설로 보내진 난민들은 철창과 감시 카메라로 둘러싸인 시설에서 실낱같은 확률에 기대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낸다. 형무소와 별 다를 바 없는 방에서 5~6명이 함께 지낸다. 하루 40분간의 운동 시간이 이들이 햇빛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일과다.

비단 난민 문제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일본이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나라라는 인식은 널리 퍼져 있다. 그런 일본이 한때는 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난민을 수용해 왔다는 사실은 점차 잊히고 있다.

일본은 1975년 베트남 전쟁 종결 후 1만1000여 명에 달하는 난민을 받아들였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 3개국에서 전후 베트남의 정세를 피해 조각배를 타고 망명에 나선 소위 ‘보트피플’이다. 이에 앞서 메이지 시대에는 러시아 혁명에 의해 축출된 난민을, 쇼와 시대에는 독일에서 망명한 유대인을 받아들였다.

1979년 중국계 베트남인 난민 루 핀 차우(劉涼珠)는 일본에서 아이돌 가수로 데뷔해 반짝 인기를 끌었다. 전설적인 아이돌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가 그의 우상이었다. ‘베트남 난민 1호’였던 루 핀 차우는 극적인 망명 과정이 화제가 되면서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4년 만에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모친과 재회하는 모습이 공중파를 타고 일본인들에게 전해졌다.

일본은 1981년에야 국제연합(UN) 난민조약에 가입했다. 1982년 정식으로 난민 인정제도가 도입되기도 전부터 적지 않은 수의 난민을 받아들인 셈이다. 그런데 정작 제도를 도입한 뒤로는 난민을 봉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신청자 6만674명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708명에 불과했다. 난민으로 인정되려면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일본은 대신 경제적 원조를 늘렸다. 일본은 유엔난민기구(UNHCR)에 미국·영국·유럽연합(EU)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난민지원기금을 내고 있다.

일본은 어떤 경위로 난민 수용에 엄격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1980년대 ‘경제적 난민’ 수가 급증하며 사회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필리핀·베트남·스리랑카 등 동남아 국가 출신이 대부분인 이들은 자국의 정세 불안이나 박해보다는 보다 풍요로운 환경을 찾아 일본으로 간 경우가 많았다.

민주당 집권 시기이던 2010년에는 일본에서 관광이나 유학 등의 체류 자격 보유자가 난민 신청을 하면 주 50시간의 노동 허가가 주어지는 제도가 도입됐다. 유학생의 근로 허가시간(주 28시간)보다 길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사회에서는 난민을 거부하는 정서가 퍼져갔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난민 수용 시 치안이 나빠지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는 비판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산케이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민이나 난민의 대규모 수용’에 찬성하는 일본인은 20%에 불과했다.


빈틈 노린 ‘위장 난민’ 증가로 쇄국 돌아서

보수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난민 수용에 부정적이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지난해 “북한에서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일본으로 난민이 몰려 올 수 있다”면서 “자위대가 출동해 사살하는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해 물의를 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2500만 명의 멕시코 난민을 일본으로 보내면 바로 퇴진하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이 난민 수용 문제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반면 일본이 선진국에 어울리는 수준으로 난민에게 문호를 열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일본 난민지원협회 등 시민단체가 처우 개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파른 인구 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한 일본은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난민 문제가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에 있는 로힝야 난민 캠프의 모습. 사진 블룸버그
난민 문제가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에 있는 로힝야 난민 캠프의 모습. 사진 블룸버그

자민당과 연립 정당인 공명당은 난민 문제에 한해서는 “난민 정책은 그 나라의 인권 감각을 비추는 거울”이라면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메이지대학, 아오야마학원대학, 간사이학원대학 등 일본 유명 사립대학은 UNHCR과 협정을 체결해 난민 자녀의 입학 추천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2020년 도쿄 올림픽과 연간 3000만 명에 달하는 방일 외국인으로 막대한 관광 수입을 올리고, 우수 외국 인재 유치에 공을 들이는 일본이 빈곤한 난민 문제는 외면한다는 비판은 정치적 부담으로 떠오르고 있다.

잠시 일본의 근대사를 돌이켜 보면,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신천지를 찾아 바다를 건넌 적이 있다. 1868년부터 1924년까지 하와이로 22만 명, 1908년부터 100여 년간에 걸쳐 브라질로 13만 명이 떠나 정착했다. 더 나은 삶을 찾아 일본으로 몰려오는 난민들과 이들의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개구리는 과연 올챙이 시절을 떠올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