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의 음식 배달 서비스인 ‘우버 이츠’의 배달원들이 맥도널드를 향하고 있다. / 블룸버그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우버 드라이버를 만날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중심 도시인 샌프란시스코 자체가 워낙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만난 우버 드라이버만 해도 엔지니어, 대학생, 소설가, 디자이너, 마트 종업원, 일반 사무직원 등 정말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금융투자 일을 한다고 했더니 자신이 설립한 스타트업에 와보라며 주소를 찍어주는 드라이버를 만난 적도 있다. 현직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직접 운전대를 잡은 경우도 있었다.

우버 드라이버 중에는 파트타임도 있고, 풀타임도 있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쪽이 많은 풀타임 우버 드라이버는 단가가 높은 야간이나 주말에 주로 일한다. 얼마 전에는 심야에 우버를 이용했는데, 드라이버가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국의 정치 상황을 소상하게 알고 있어 신기했다.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레바논의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다 얼마 전 미국으로 이민 온 전직 교수였다. 이렇게 지적이고 흥미로운 배경을 가진 드라이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시내까지 30분 남짓한 시간을 매우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프리랜서, 계약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여기에 기반한 경제 모델을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고 한다. 공유경제가 확산되면서 긱 이코노미의 범위도 차량(우버·리프트), 숙박(에어비앤비)에서 집안일(헬로알프레드), 사무실 청소(매니지드바이큐), 전문 엔지니어나 변호사,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종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재 미국 근로자의 35% 정도가 긱 노동자(Gig Worker)로 분류되고 있고, 2020년이 되면 이 비율이 40%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긱 이코노미의 성장은 플랫폼 사업 덕분에 가능했다.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홍보하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방식의 서비스 공급 구조가 필요 없게 됐다. 기업이 플랫폼을 만들면 긱 노동자가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긱 이코노미 덕분에 이용자는 낮은 비용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기업은 고정적으로 나가는 인건비를 줄일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과연 긱 이코노미가 긱 노동자들에게도 이로운 모델이냐는 것이다.

긱 노동자들에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 시간(flexible hours)’을 제일 먼저 꼽는다. 근무 시간이 유연한 덕분에 생산성도 높고 수입도 적지 않다는 말이다. 실제로 긱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전체 노동자 평균보다 높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처럼 전문직 프리랜서가 많은 곳은 급여 수준도 더 높다. 프리랜서 구인·구직 플랫폼인 업워크(Upwork)의 통계에 따르면 가장 급여가 높은 프리랜서 직종은 인공지능(AI), 딥러닝, 블록체인 아키텍처 분야 등으로 시간당 평균 급여가 100달러(11만원) 수준이다. 실리콘밸리 현지 벤처캐피털인 밍신그로스펀드의 마크 루이(Mark Louie) 대표는 “수많은 기업이 설립되고 많은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프리랜서 고용이 기업 입장에서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또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가 워낙 많기 때문에 기술을 보유한 고급 엔지니어들은 긱 노동자로서 삶의 여유와 경제적 안정을 동시에 누릴 수도 있다. 이들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취업할 수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긱 노동자의 길을 택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시간에 하면서 개인적인 꿈도 추구한다.

유연한 근무 시간은 특히 여성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큰 장점이다. 아이스버그솔루션의 파트너 사브리나 위엔(Sabrina Yuan)은 “육아와 커리어를 병행해야 하는 전문직 여성들에게 긱 이코노미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프리랜서 플랫폼을 통해 기존의 고용시장과 달리 성별·지역·출신에 차별받지 않고 일감을 찾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문직이 아닌 여성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여성 우버 드라이버를 심심치 않게 마주치게 된다. 한 여성 드라이버는 맞벌이를 하는데도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부부가 번갈아 가며 운전대를 잡는다고 했다. 우버가 이들에게는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소중한 세컨드 잡인 셈이다.


긱 노동자 총연봉은 평균보다 낮아

하지만 긱 이코노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분명하다. 긱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기존 계약직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제일 큰 문제는 불안정한 수입이다. 시간당 임금은 높지만, 일감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서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별한 기술을 보유하거나 배우자가 수입이 있는 경우 ‘프리 선언’이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불안정한 수입이 큰 부담이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긱 이코노미를 연구하는 폴 오이어(Paul Oyer) 교수는 최근 수년간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의 수입과 고용환경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왔다. 그는 연구 목적으로 직접 우버 드라이버로 일하기도 했다. 오이어 교수는 우버 드라이버를 직접 해보고 가장 놀랐던 점을 묻는 질문에 “‘오늘 번 것이 이게 전부인가(That’s all I made?)’였다”라고 답했다. 하루 운전을 끝내고 정산해 보면 수입이 너무 적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오이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긱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전체 평균보다 15% 높지만, 총연봉은 전체 평균보다 6% 낮았다.

기업들은 긱 노동자를 연금·보험 등 복지를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긱 이코노미를 사회 안전망 안으로 넣으려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2015년 시애틀 정부는 조례 제정을 통해 우버·리프트 등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들의 노동조합을 허가했다. 이후 이들 회사의 드라이버들은 시간외수당, 비용, 손해 보상 등을 회사에 요구하고 있다. 리프트를 상대로는 ‘드라이버를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긱 이코노미는 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통적인 계약직과 프리랜서 고용의 ‘정보기술(IT)’ 버전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시간에 하고, 부가 수입도 얻고, 꿈도 추구할 수 있다”는 긱 노동자의 유토피아는 그 자체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순진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사실 긱 이코노미의 장점인 유연한 근무 시간은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공통적인 변화의 방향이기도 하다. 유연한 근무 시간을 위해 굳이 긱 노동자의 험난한 길을 택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긱 노동자의 많은 수를 차지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는 매우 현실적이다. 2016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의 90% 이상이 정규직 취업을 원한다고 답했다.

물론 앞으로도 실리콘밸리에서는 더 많은 긱 노동자가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프리랜서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건 금물이다. 경쟁이 치열하고 물가 높은 것으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실리콘밸리에서 긱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 양연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공학, 스탠퍼드 경영학석사(MBA), 핌코(PIMCO) 미국 회사채 분석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