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1년을 눈앞에 두고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과는 대조적으로 경제성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했지만 고용 개선은커녕 정부가 막대한 추경을 편성했는데도 일자리는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청년실업은 치솟고 자동차·조선·타이어 등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산업의 고용문제는 악화일로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규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취약계층의 경제적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노동력 부족을 걱정할 만큼 일자리가 풍부해진 일본·미국 등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노동시장의 수요 급증으로 일본은 올들어 1997년 이래 가장 큰 폭의 임금 상승이 기대되고 있고, 미국도 연간 약 3%의 임금 인상이 예측되고 있다.

당황한 우리 정부는 혁신성장을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실천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 실천의 부재를 떠나 정부의 혁신성장 주장은 노조 편향적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 차단용 립서비스’라는 의구심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혁신성장과 배치되는 시장개입과 반기업적 압력 행사가 극성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청년실업의 급증은 정말 걱정된다. 청년실업률은 문재인 정부 1년 만에 캐나다·미국을 추월해서 이제 영국을 넘어설 태세다. 이런 현상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시장 직접 개입을 통한 소위 소득주도 성장론의 역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는 유통상생발전법을 근거로 롯데몰 군산점에 대해 사업개시 일시 정지 명령을 내렸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 법으로 인해 군산의 고용 사정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한국GM 공장의 폐쇄로 일자리가 재난적 상황을 맞은데다 롯데몰에 직접 고용되는 400여명과 이보다 훨씬 많을 연관 사업의 일자리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해집단 대리인으로 전락한 정부

문재인 정부는 한국 경제를 ‘을’에 대한 ‘갑’의 착취나 불공정 질서로 보고 을의 편을 드는 것이 정의롭다는 정치적 환상에 빠져 있다. 그래서 을을 자처하는 이해집단의 수호자 내지는 대리인이 되고 있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정부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반기업 정치 세력들이 가세하면서 대기업의 경제적 자유가 봉쇄되고 있다. 택시기사와 택시회사를 차량공유업체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국토부와 서울시의 규제도 모두 경제적 약자 보호라는 이름하에 정부가 이해 집단의 대리인으로 전락한 경우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처럼 경쟁을 보호해야 할 부처마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을 프레임’은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라는 혁신 이론을 전적으로 부인하면서 좋은 일자리의 출현을 가로막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택시회사와 택시 조합은 우버가 약탈적 가격으로 택시의 이익을 심하게 침해한다며 우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미 법원은 “공정거래법은 경쟁을 보호하려고 존재하는 것이지, 경쟁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일갈하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것이 공정거래법의 취지다. 우리 정부와 정치적 사회단체도 자신들이 내세우는 을을 위한 정의가 ‘경쟁이 아니라 경쟁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해집단의 힘이 크건 작건, 그들은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한다. 그 경쟁에서 실패하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 시장의 원리다. 이해집단 편들기를 하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라 이미 로비스트다. 청년들은 골목 시장의 일자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형 유통점의 사원이기를 원할지 모른다. 정부가 할 일은 일자리의 보호가 아니라 질 나쁜 일자리의 퇴출이어야 한다. 창조적 파괴라는 혁신은 기존 일자리의 파괴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주 오래 전, 미국의 경제 칼럼니스트 리처드 맥킨지는 정부의 일자리 보호 신앙(jobism)은 미신이며 정부가 할 일은 반대로 일자리의 신진대사를 돕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정부는 오래된 원시시대의 일자리 토템 신앙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