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로치 (Stephen Roach) 뉴욕대(NYU) 경제학 박사,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연구원,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회장, ‘넥스트 아시아’ 저자
스티븐 로치 (Stephen Roach)
뉴욕대(NYU) 경제학 박사,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연구원,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회장, ‘넥스트 아시아’ 저자

지금 세계 경제는 날이 갈수록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라와 나라 간 무역과 금융 자본의 연관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 나라의 투자와 저축의 차이를 나타내는 지표인 ‘경상수지’가 이 둘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나라별 경상수지 적자·흑자 규모에 따라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이런 글로벌 불균형은 종종 위기의 전조가 되기도 한다). 무역 갈등도 마찬가지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무역 갈등 상황들은 경상수지 불균형이 원인이 돼 싸움으로 번진 경우다.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는 나라(이하 적자국)의 경제는 낮은 저축률로 고통받는 경향이 있다. 저축은 안 하면서도 투자와 성장을 바라기 때문이다. 이럴 땐 해외에서 ‘잉여 저축분’을 끌어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교역량을 확대하고 해외 자본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적자국의 무역 적자가 심화된다.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나라(이하 흑자국)는 반대 상황에 처한다. 소비가 적고 저축은 넘쳐나면서 꾸준히 무역 흑자를 내는 것이다.

자국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다른 나라의 잉여 저축을 끌어와야 하는 적자국 미국과 수출을 통해 성장을 꾀하는 흑자국. 둘 중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묵은 ‘비난 게임’이 최근 더 논란이 돼 국제 경제 정책·무역 관계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은 현재 세계 최대 수준의 경상수지 불균형을 겪고 있다. 1982년 이후 미국 경제는 딱 한 번을 제외하고 매년 경상수지 적자 행진을 이어왔다. 1991년이 미국 경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던 해다. 이마저도 우방들이 걸프전(戰) 참전 비용을 분담한 덕분에 나타난 기록상 흑자였다(GDP의 0.05% 규모).

2000~2017년 사이 미국의 누적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9조1000억달러 수준이었다. 같은 기간 독일·중국·일본 등 대표적인 흑자국들의 경상수지 흑자 총합이 8조9000억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준이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만성 적자를 유지하는 것이 내수 부족에 시달리는 주변국에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일부 사람은 장기간 지속돼온 미국의 과잉 소비 그리고 주변국의 경상수지 흑자를 유도한 미국의 역할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두 관점 모두 타당하다고 보지만 미국의 불안정한 역할이 더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미국인이 가진 ‘소비는 당장, 저축은 나중에’식의 마인드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 원인이 됐다. 이런 생각은 미국의 정치·경제계에도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미국 세법은 오랜 기간 저축을 조금만 하고 빚을 내 소비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실제로 모기지 이자가 세금 공제 항목에 포함되거나, 연방정부에서 부가가치세나 소비세를 부과하지 않는 점, 저축 관련 인센티브가 부족한 점 등이 문제다.

자산 버블에 따른 ‘부(富)의 효과’에서도 이런 현상이 잘 나타난다. 1990년대 후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주도로 자산 가격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는데, 이런 자산 버블 현상은 치명적인 상호 관계를 부추기게 된다. 경제가 버블 자산에 의존하게 된 데다, 더 나아가 이를 담보로 한 레버리지 투자로 이어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거품 낀 자산 시장이 있는데 왜 굳이 저축해야 하느냐’는 인식이 생겼다. 이렇게 소득에 기반한 저축보다 (거품 낀) 자산에 기반한 저축을 선호하게 된 것이 미국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방대해진 핵심 요인이다.

흑자국은 그저 이런 상황을 즐길 뿐이었다.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던 주요 동력인 미국의 소비 행진이 모래 위에 세워진 성이라는 사실이 이들 나라엔 중요하지 않았다. 과잉 수출에 의존한 흑자국의 성장이 미국의 과잉 소비로 이어졌고, 반대 경우로도 이어지는 구조가 완성됐다.

중국이 대표적인 경우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선언에 힘입어 중국의 수출 규모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규모가 1980년 6%에서 2006년 36%로 무려 무려 6배 가까이 증가했다.

중국의 경상수지는 미국의 경상수지와 함께 움직였다. GDP 대비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1980년 0.1%에서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엔 9.9%까지 늘었다. 중국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다른 선진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의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 19%에서 2007년 43%까지 증가했다. 일본 역시 이 기간 13%에서 17.5%로 늘었다.

이런 식의 흑자국과 적자국 간 ‘정략결혼’은 결국엔 완전한 ‘상호 의존’ 체계로 발전하게 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이 ‘음악’은 중단됐다. 두 나라 관계는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고 결국엔 전면적인 무역 전쟁 위기가 커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행정부는 국민에게 미국이 무역 적자의 희생양이라는 적대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사실 미국과 주변국 간 무역 격차가 생기게 된 근본 원인은 미국의 만성적인 저축 부족에 있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개인 저축률 추정치를 올려 잡았다. 하지만 미국 국민의 저축률은 여전히 낮다. 2009~2017년 기준 1.9%(통화 가치 반영)에 불과했다. 이는 20세기 마지막 30년간의 평균 저축률 6.3%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중국 경상수지도 적자 전환 가능성 커

이미 막대한 규모에 달하는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는 향후 몇 년간 더 불어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빼고 모든 비난의 화살을 중국으로만 돌리고 있다.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최근 감소하고 있다. GDP 대비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007년 9.9%에서 올해 1%까지 떨어졌다. 2017년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1650억달러를 기록, 독일(2970억달러 흑자)과 일본(150억달러 흑자)에 크게 못 미쳤다.

중국은 소비 주도로 경제 노선을 변경하고 있다. 동시에 잉여 저축이 많던 중국 경제도 (미국처럼) 다른 나라의 저축을 흡수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실제로 1분기 중국의 경상수지는 적자를 기록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저축 부진을 극복하고 성장을 끌어내려는 만성 적자국 미국과 (중국보다는 규모가 작은) 흑자국만이 또 남게 된다는 점이다. 어쩌면 다른 나라들이 한발 나서서 이 공백을 메울 수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화를 외면함에 따라 그럴 가능성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경상수지 불균형 상태는 세계 경제 흐름에 중요한 단초로 작용해왔다. 세계 경제는 여전히 불균형 상태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교훈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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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지 한 나라가 상품과 서비스 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돈과 해외로 빠져나간 돈의 차이를 말한다. 경상수지 적자란,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보다 수입으로 빠져나간 자금이 더 많다는 뜻이다.

글로벌 불균형 미국 등 주요 수입국에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는 반면, 중국이나 산유국 등 주요 수출국에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는 국제 무역 불균형 상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