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진 한국정밀공학회 초대회장
이봉진 한국정밀공학회 초대회장

미국 정부의 부채는 지난 11월말 기준 약 21조달러에 달한다.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는 중국(1조1500억달러)이다. 중국에 이어 2위인 일본은 미국 국채 1조280억달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미국 국채 보유액(1108억달러)보다 10배가 많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수치는 많다. 일본이 2017년 말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1012조4310억엔(약 1경124조원)이다. 한국의 대외자산은 일본의 7분의 1 수준인 1조4537억달러(약 1614조원)에 불과하다.

나라 살림 규모도 격차가 크다. 2018년 일본 예산은 우리나라 예산(428조원)의 두배가 넘는 97조7128억엔(약 977조1280억원)에 달한다. 1인당 국민소득(GDP)도 일본이 3만8428달러로 한국(2만9744달러)보다 훨씬 많다.

숫자로 나타나는 통계만 그런 게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평가하는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일본은 5위인 반면 우리나라는 15위를 기록했다. WEF의 국가 경쟁력은 경제성장 잠재력을 잣대로 판단한다. 그만큼 일본은 여전히 성장 잠재력이 크지만, 한국은 투자 대상국으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WEF 국가 경쟁력 1~4위는 미국, 싱가포르, 독일, 스위스다.

미국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의 ‘국가 영향력’에 대한 조사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뒤진다. 국가 영향력은 지도자의 영향력, 경제적 영향력, 정치적 영향력, 국가동맹관계, 군사력을 고려해 산정된다. 이 조사에서 일본은 7위에, 한국은 11위에 올랐다.

영국의 세계적인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브랜드 파이낸스가 발표하는 국가 브랜드 조사에서도 일본은 미국, 중국, 독일, 영국에 이어 5위에 오른 반면 우리나라는 10위를 기록했다. 국가의 브랜드 가치는 일반적으로 국가에 대한 인지도·호감도·신뢰도 등 유·무형의 가치를 모두 합친 것을 말한다. 국가 브랜드는 외국인의 투자를 유치하고, 외국 관광객을 불러들이며, 수출품의 가치를 높이고,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는 등 국가의 전반적인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는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올 1~10월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2347만명이었다. 같은 기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1267만명의 두배 가까이 됐다. 엔저 현상과 더불어 일본 정부가 적극적인 관광 진흥책을 펼친 것도 있지만, 그만큼 외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전 세계가 일본을 객관적으로 또는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늘 상위권이다. 우리나라도 경제·문화적으로 일부 부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일본보다는 아래다.

하지만 전 세계가 호평하는 가운데서 유독 우리나라만 일본을 무시한다. 일본의 글로벌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깔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주장의 근거가 빈약하다. 일본이 과거에 대해 사죄하지 않거나 반성하지 않는다는 데 대한 분노이거나 우리(한국)가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감정 차원의 주장이다. 지나치게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감정에 휘둘려서는 낭패를 볼 뿐이다. 앞에서 많은 예를 들었지만 일본 경제는 우리보다 앞서 있다. 산업 측면에서 봐도 우리가 주도하는 분야가 있긴 하지만 원천 핵심기술은 일본이 독차지하고 있다. 일본을 이기지 않고는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 것은 현실을 바로 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갈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 적(敵)을 얕잡아 보는 건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일본을 무조건 싫어하거나 무시하는 최근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앞날을 생각하게 된다. 나도 일본이 밉다. 그러나 미워도 다시 한번, 우리는 눈을 더 크게 뜨고 일본 그리고 세계를 제대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