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헬 구리아(Angel Gurria) 리즈대 경제학 석사, 멕시코 수출입은행 최고경영자, 멕시코 재무부 장관
앙헬 구리아(Angel Gurria) 리즈대 경제학 석사, 멕시코 수출입은행 최고경영자, 멕시코 재무부 장관

 국제적인 차원의 협력은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세계 곳곳에서 보호무역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각국 정부는 협력을 택하기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인 조치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가 각국 정부의 공통된 정책 목표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각국 정부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국제 협력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개선하는 효과는 분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각국 정부가 금융 정보를 자동으로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한 덕분에 850억유로(약 106조5000억원)에 달하는 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 돈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재원으로 쓰일 것이다. 이 밖에도 OECD는 다양한 분야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국제 공조를 추구하고 있다. 뇌물 수수 금지 협약을 체결한 덕분에 43개 국가에서 기업이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범죄 행위로 다뤄지고 있다. 70개 이상의 나라는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을 도입해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교육 정책을 만드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것들은 국제 협력을 추구하는 글로벌 기구가 현대 사회에 제공하는 여러 이익 중 몇 가지 사례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이런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다자주의의 진정한 가치는 이런 단편적인 사례나 프로그램, 정책을 초월한다.

국제 협력 시스템과 국제 기구의 진정한 역할은 전쟁을 막는 데 있다. 전쟁을 방지하는 방어벽 역할은 그 어떤 경제적인 측정법으로도 잴 수 없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다자주의는 유럽이 제2차세계대전의 폐허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그 뒤에는 유럽인들의 복지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걸 도왔다. 그러면서 또 다른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온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많은 사람이 국제 협력을 통해 오늘날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잃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국제 협력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다. 세계 경제는 서로 협력하고 교류하면서 성장을 촉진하고 수백만 명을 빈곤에서 구제하고, 생활 수준을 높였지만, 성장의 과실을 충분히 나누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금 다자주의는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풀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자주의를 포기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지금의 상황에 맞춰서 다자주의를 고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지금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규모를 고려하면, 그 어떤 나라도 혼자서 단독으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양자 간의 해결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복잡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면 다자간의 노력에서만 가능하다. 다자간의 협력은 각국의 차이를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한 장소를 제공해줄 수 있다. 또 여러 국가가 공통의 규칙에 합의할 수 있는 플랫폼과 국제적인 흐름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는 메커니즘도 제공한다. 앞서 나간 국가가 뒤에서 따라오는 국가를 위해 정책적인 아이디어와 경험을 나누는 것도 도와준다. 국제 협력과 통합을 위한 노력은 이런 식으로 작동하며 지난 70년간 현대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다.


분열된 세상에선 모두가 패자

얼마 전에 OECD 회원국 각료들은 파리에서 모임을 가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주도로 모인 OECD 회원국은 다자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을 깨뜨리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다.

우리는 다자주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새롭게 떠오르는 디지털 기술이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규제를 만들어야 하고, 그 기술이 제공하는 효과와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세계 무역과 투자에 관한 법과 제도를 없애서는 안 되고, 다자주의가 제공하는 이득을 더 널리 확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불평등에 맞서고 취약 계층을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다음 세대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도록 환경 문제에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실업, 임금 감소, 주택, 보건 같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다른 국가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다. 부패나 불법적인 자금 흐름, 사이버 보안 위협, 불공정 경쟁, 공해, 기후 변화같이 세계적인 문제들에 맞서는 데는 당연히 국가를 뛰어넘는 협력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를 개별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체 문제를 건드릴 수 없고 단기적인 처방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5월 3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각료회의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5월 3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각료회의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미국 의회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효과적이고 책임감 있으며 결과지향적인 새로운 다자주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는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을 존중받을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으며 다 같이 자유롭게 번성할 수 있는 다자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OECD 같은 국제 기구 차원에서 단순히 기존의 국제 협력을 강화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고쳐나가야 할 점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는 이야기였다.

다자주의를 지금 시대에 맞게 고치는 데에는 모든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나 정부나 제도에 대한 신뢰를 잃은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다자주의는 더 나은 삶을 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분열된 세상에서는 우리 모두가 패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지식과 경험, 자원을 한데 모아서 책임감 있고 효과적이며 포괄적인 다자 협력 시스템에 위탁한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더 밝고 번영하는 미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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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각료회의
OECD는 세계 경제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부 간 정책연구·협력기구다. 1961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발족했다. 올해 OECD 각료회의에서는 자유무역과 국제 협력의 회복을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개편이 논의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올해 말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까지 WTO 개혁을 위한 밑그림을 만들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