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곤잘레스 미란다 (Maria Gonzalez-Miranda) 세계은행 ‘거시경제·무역·국제투자행동’ 매니저
마리아 곤잘레스 미란다 (Maria Gonzalez-Miranda) 세계은행 ‘거시경제·무역·국제투자행동’ 매니저

정보기술(IT)은 전통적인 상거래의 풍경을 바꿨다. 여기에 더해서 IT는 집 안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을 위한 최적의 유비쿼터스 환경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제 집 안에서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스크린을 터치하는 것만으로도 세계에 존재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검색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제품의 가격을 비교하고, 배송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런 변화는 길거리의 마트에서 먼지가 덮인 채 선반에 진열된 물건들을 일일이 들어보고 고르던 사람들에게 꿈 같은 변화일 것이다.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사거나 무언가를 주문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가격을 비롯한 다양한 조건을 협상해야 했다. 하지만 온라인 시장에서는 쇼핑을 도와주는 다양한 기능 덕분에 물건을 구매할 때 걸리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모든 과정에서 거래 비용도 크게 절감됐다.

이발로 이즈보르스키(Ivailo Izvorski) 세계은행 ‘거시경제·무역·국제투자행동’ 수석 이코노미스트
이발로 이즈보르스키(Ivailo Izvorski) 세계은행 ‘거시경제·무역·국제투자행동’ 수석 이코노미스트

온라인 시장은 검색엔진이나 아마존 같은 단일 플랫폼을 통해 가격이나 효율성, 고객 경험 같은 소비자 복리후생을 크게 개선할 잠재력이 있다. 온라인을 통해 물건을 구입하는 비용이 재래시장을 통한 것보다 낮아진다면, 소비자들은 같은 돈을 가지고도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전반적인 경제 활동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문제는 과연 지금의 온라인 시장이 이런 잠재력을 충족시키고 있느냐다. 최근 테크기업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소비자들의 비용을 절감하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온라인 시장을 이용하는 소매업체는 이용자의 인터넷 활동과 여러 가지 개인정보를 이용해 이른바 ‘목표 가격’을 제공한다. 예컨대 항공사들은 인터넷 이용자의 각종 개인정보를 이용해 맞춤 티켓 가격을 제공하고 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인터넷에서 비싼 자동차나 비용이 많이 드는 휴양지를 검색한다면, 이런 검색 정보는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고, 전달된다. 그리고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광고주나 소매업자들은 다음번에 당신이 검색창에 무엇을 치든 더 비싼 시계와 더 비싼 가구, 더 비싼 항공권을 제시하는 것이다.


검색 결과 활용해 이용자별 다른 가격 제시

이런 식으로 소득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검색 결과를 제공하는 게 일상적인 일이 됐다.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같은 상품이나 서비스인데도 검색하는 사람에 맞춰서 전부 다른 가격을 제시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온라인 시장은 ‘마켓 세그먼테이션(수요에 맞춰 시장을 분할해서 각층에 대해 집중적으로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것)’이 활발하다. 온라인 시장을 이용하는 소매업자들은 수요에 따라서 가격을 바꾸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5월 ‘애틀랜틱’에 실린 기사를 보면 ‘2015년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자 호박파이 향신료의 가격은 치솟았다. 아마존에서 파는 1온스짜리 향신료 한 병의 가격은 당신이 검색하는 시간에 따라서 4.49달러에서 8.99달러까지 달라졌다’고 나왔다.

이런 형태의 가격 차별은 인종·민족·성별·종교에 근거하지 않는 한 합법적이다. 극단적으로 보면, 우리의 선호나 소득·소비 패턴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모든 거래에서 소비자마다 각각 다른 가격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다면 소비자 잉여는 제로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식으로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서 가격 차별 현상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에게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점유율을 높이려는 오프라인 소매업자의 존재나 온라인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신규 사업자의 존재가 항상 경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 몇몇 산업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경쟁 업체들에 모두 공유되기도 한다. 같은 데이터를 활용하면 가격 차별이 나타나기도 어렵다.

하지만 온라인 시장은 계속해서 세분화되고 있고, 소비자의 선택권은 제약받고 있다. 소비자가 자신의 과거 데이터에 따라서 이미 결정된 상품만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사회 전반의 복리후생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모든 소비자가 자신이 구매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비용을 지불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가 이용할 수 있는 ‘여분의 돈’이 남지 않게 되기 때문에 인터넷을 이용한 거래 비용 절감의 효과가 사라지게 된다.

IT 기술은 쇼핑 패턴을 바꿨지만 최근에는 소비자 편익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IT 기술은 쇼핑 패턴을 바꿨지만 최근에는 소비자 편익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거시경제에도 악영향

설상가상으로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갈수록 경쟁을 덜하는 추세다. 기술 개발을 위해 더 많은 자본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경쟁을 피하고 있다.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의 지갑에서 돈을 효과적으로 빼낼 수 있게 되면서 굳이 경쟁을 할 필요도 없어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변화하는 민간 소비 패턴은 거시경제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소비자들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파이는 작아지게 되고, 결국에는 경제 전체의 총수요가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다.

인터넷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테크기업들이 이용자들로부터 수집한 개인정보를 어떻게 사용하도록 해야 할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테크기업들은 이용자의 개인정보나 데이터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용했다. 앞으로 수년 후 그리고 수십 년 후를 보면, 우리는 테크기업들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사회 전체를 위해 쓸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온라인 시장이 소비자의 편익을 돕고 경제 전체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를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건 모두를 위한 일이 될 것이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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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
소비자들이 어떤 재화나 서비스에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과 실제로 그들이 지불한 가격의 차이를 말한다. 소비자 잉여가 크면 소비자가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얻고 싶은 재화를 그보다 낮은 가격에 얻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얻은 복리나 잉여만족을 뜻하기도 한다. 소비자 잉여가 클수록 소비자가 누리는 이득도 크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