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여성의 행진(Women’s March)’에 참가한 시위대. <사진 : 블룸버그>
지난 1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여성의 행진(Women’s March)’에 참가한 시위대. <사진 : 블룸버그>

2018년 2월 6일은 제1차세계대전 중 여성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몇몇 영국 여성들에게 처음으로 참정권을 부여한 국민대표법이 제정된 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지도자인 밀리센트 포셋(Millicent Fawcett)과 에멀라인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의 동상이 영국의 주요 도시에 세워질 예정이다.

참정권을 가졌다고 해서 여성이 완전히 해방된 건 아니었다. 여성의 경제적인 해방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영국 경제학자인 케인스를 따르는 경제학자들이 내세운 경제 정책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들이 집 밖으로 나와 공장과 가게에서 일하도록 만들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부족한 남성 노동력만으로는 정부의 경제 정책을 집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등을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많은 승리를 거뒀다. 상속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은 사라진 지 오래다. 고위직 관료를 선발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여성에 대한 편견은 남아 있지만 제도적으로는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우한다.

동일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지급하는 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중국 담당 편집자였던 캐리 그레이시(Carrie Gracie)는 최근 사임했는데, 남성과 여성 간의 불평등한 임금 체계에 항의하는 차원이었다. 그녀는 공개서한을 통해 “BBC가 남녀 구분 없이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을 받도록 한 영국의 평등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부끄러움을 느낀 BBC의 남성 편집자 6명은 임금 삭감에 동의했다.


스포츠계 임금 체계는 여전히 불평등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만드는 습관이나 편견, 사회적인 무력감을 극복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성에 대한 불평등한 대우 가운데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 중에 가장 흥미로운 건 스포츠처럼 신체적인 능력을 활용하는 영역이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남성들은 더 강하고 빠르고 키가 컸기 때문에 전쟁을 담당했다. 오늘날 불평등한 임금 체계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곳이 과거의 전쟁이 의례적인 형태로 변했다고 볼 수 있는 스포츠 분야라는 것은 놀랍지 않다.

대부분의 메이저 스포츠 경기는 남성과 여성 팀을 분리한다. 리그도 분리돼 있고, 여성 경기에서는 남성 경기보다 성취도가 낮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남성 선수들이 나서는 테니스 경기는 5세트로 이뤄지지만 여성 테니스 경기는 3세트로 이뤄진다. 수영에서 남성 선수가 나서는 가장 긴 거리는 1500m인 데 반해 가장 긴 여성 경기는 800m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스포츠도 있는데, 승마가 대표적이다.

승마에서 여성은 단순히 경주만 하는 게 아니라 마장 마술, 장애물 뛰어넘기, 스리데이 이벤트(Three-Day Event·3일 연속으로 진행되는 승마 대회)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겨룰 수 있다.

성과가 같지 않은데 급여가 평등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테니스의 경우 그랜드슬램 대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에게 같은 상금을 지급하지만, 다른 많은 경기들에서는 차이가 있다. 특히 축구에서는 이런 차이가 극심하다. 영국의 여성 프로축구 팀 주장 스테프 호튼은 단지 6만5000파운드(약 9700만원)의 연봉을 받을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구 선수 중 한 명인 네이마르는 이것보다 대략 500배 이상 많은 연봉을 받는다. 영국 여성 프로축구 리그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3만5000파운드 정도인데, 남성 프로축구 리그에 속한 첼시의 평균 연봉은 450만파운드나 된다.

경제학을 활용해 이런 논란에 대해 따져볼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급여가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자주 활용하는 논지로, 가치에 대한 오래된 노동 이론이 있다. 이 노동 이론에선 오로지 노동에 의해서만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고 본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발달로 이런 이론은 힘을 잃게 됐다. 현실 세계에서 노동 시간과 시장 가격 사이에는 이렇다 할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았고, 경제학자들은 시장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필요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없애야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임금과 급료를 포함하는 가격이 소비자의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하나의 물건이 얼마인지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시간과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그 물건이 어떤 가치를 주느냐에 달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남성 축구 선수가 여성 축구 선수보다 많은 돈을 받는 이유는 남성 축구 선수에 대한 수요가 더 많기 때문이다. 만약 여성 프로축구 팀이 남성 선수들에게 주는 것처럼 급여를 주기 시작한다면 그 팀은 곧 파산할 것이다. 소비자 수요 이상의 임금을 요구하는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될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이 보기에 시장 가격은 도덕적인 가치와 무관하게 그저 시장 가치를 반영할 뿐이다. 만약 우리가 도덕적인 가치를 반영한 정의로운 가격을 원한다면 사회주의적인 해법을 쓸 수밖에 없다. 시장을 폐쇄하거나 개인의 선호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런 것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미디어와 남성 스포츠에 대한 스폰서십에서 흔히 발견되는 성에 대한 구조적인 편견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스포츠에서도 여성은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시장 가치는 소비자의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이런 수요를 만드는 소비자의 선호 자체가 사회적으로 강요된 구조적인 편견의 결과라면 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사회적인 편견을 제거하면 여성 스포츠 경기에 대한 수요가 남성 스포츠 수요와 같아질 것이다.

이 주장은 스포츠를 넘어서는 이야기다. 진정한 성평등은 성별 고정관념에 의해 취향이나 버릇이 형성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여자아이에게 인형을 선물하거나 남자아이에게 장난감 총을 선물하는 게 당연시되지 않을 때, 진정한 성평등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대안은 충분히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이미 우리는 언어 속의 성편견을 없애기 위해 체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대학 강의들은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성편견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규제를 받는다.

성별 그 자체도 점점 더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간주된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성(gender)을 선택할 수 있도록 권장할 필요가 있다.


▒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영국 옥스퍼드대 역사학 전공,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영국 사민당 창당 멤버, 영국 보수당 상원의원,  영국 재정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