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워싱턴DC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해 12월 워싱턴DC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세는 2019년까지도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의 경기 확장이 9년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당장 경기침체를 의심할 만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위험 요인은 금융 부문의 취약성이다. 지난 10년 동안 금리는 지나치게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게 형성돼 있다. 반대로 이 때문에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은 극도로 높아졌다. 예컨대 미국 증시의 대표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8배 정도로 과거 평균보다 70% 정도 높은 편이다. PER은 주식가격을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인데, PER이 높다는 것은 그 기업의 주가가 수익에 비해 높게 형성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높은 자산 가격이 과거의 평균적인 수준으로 회귀한다면 투자자들이 감수해야 하는 손실은 10조달러(약 1경 7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자산 가격 하락은 결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게 하고 기업들은 투자를 멈추게 만들 것이다.

또 다른 위험 요인은 무역 분쟁이다. 무역 분쟁이 격해지면 미국 경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예컨대 한국과의 무역 분쟁이 미국 경제 성장 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미국 내의 정치적인 사건들도 위험 요인에서 빼놓을 수 없다.


낮은 금리 때문에 통화정책 제한

사실 미국에서 경기침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난 50년간 아홉 번의 경기침체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과거의 경기침체와는 다르다. 지금 상황이 더 우려스러운 건 단기금리가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낮은 금리 수준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다가올 경기침체기에 통화정책을 쓰는 데 제약이 될 수밖에 없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전통적으로 경기침체에 대처할 때 단기간에 연방기금금리를 대폭 낮췄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경기침체기인 2007년을 예로 들어보자. 2007년 7월에 기준금리의 평균이 5%가 넘었는데, 2008년 12월에는 0.16%까지 낮아졌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불과 1년 반 만에 금리를 5%포인트 넘게 떨어뜨린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작년 말 기준으로 기준금리 평균(미국은 주마다 같은 시기의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차이가 날 수 있음)은 고작 1.4%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낮출 여지가 거의 없다.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제시한 2019년 말 기준금리 평균은 2.9%였다. 지금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제대로 된 통화정책을 펼치기에는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다.

지난번 경기침체 때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수요를 촉진하기 위해 이른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선보였다. 단기금리를 낮게 유지하면서 장기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이었다. 대규모로 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자금)을 공급하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의 궁극적인 목적은 금리를 충분히 낮게 유지해서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데 있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부를 증가시키고 소비를 늘리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통화정책을 쓸 수 있는 여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다음에 경기침체가 찾아오면 정부로서는 재정정책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세금 제도를 손보고 정부 지출을 늘리는 정책을 써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재정정책의 효과다. 일시적인 감세는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개인소득세를 일시적으로 인하하는 건 경기부양 효과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납세자가 세금 감면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소비를 늘리기보다는 부채를 줄이거나 저축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화당이 통과시킨 세금 개혁 법안은 2025년에 만료가 예정돼 있다. 공화당은 일시적인 감세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2025년 이후까지 세금 개혁의 효력을 연장시키려고 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경기침체가 찾아오면 감세를 영구적으로 시행하기 좋은 타이밍이 될 것이다.


국방비 지출 늘리는 것도 방법

경기침체를 이겨내는 또 다른 재정정책은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이다. 경기침체기였던 2007년에는 모든 종류의 인프라에 정부 지출을 늘리는 데 당파를 초월한 지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가 현실화되기까지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삽을 들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쉽지 않았다.

과거의 사례를 참고하면, 정부와 의회는 경기가 침체될 때 시행할 수 있는 인프라 개선 프로젝트 목록을 미리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앞으로 몇 년간 경기침체가 없다면, 이런 프로젝트를 미리 시작하는 것도 좋다.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은 국방비 지출을 늘리는 것이다. 연방 정부의 예산을 강제로 자동삭감하는 시퀘스터(sequester) 때문에 미국 국방 예산의 GDP 대비 비율은 2012년 4.3%에서 2023년 2.8%까지 줄어들 예정이다. 국방 분야 전문가들은 이 정도 수준의 국방 예산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국방 예산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미국 국방 예산은 최소한 GDP의 4% 수준은 돼야 국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정부의 부채비율은 GDP의 77%에 달한다. 미국 의회예산처는 추가 입법 없이도 이 비율이 10년 뒤에 97%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높은 부채비율은 세금 감면이나 정부의 지출 증가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경기침체가 닥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선택지는 많지 않을 게 분명하고, 의회가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정책을 펼칠 수 있는 여지를 넓혀놔야 한다. 부채 증가 속도를 둔화시키기 위한 확실한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keyword

시퀘스터(sequester)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 누적을 막기 위해 시행하는 자동예산삭감 제도. 다음 회계연도에 허용된 한도 내로 적자를 줄이지 못하면 지출 예산을 애초 설정된 목표에 따라 자동 삭감하는 것이다. 1985년 필 그램 상원의원 등이 발의한 ‘균형예산 및 긴급적자통제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격리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시퀘스트레이션(sequestration)의 줄임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