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라이언 미 하원의장이 세제 개혁 법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폴 라이언 미 하원의장이 세제 개혁 법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10년도 더 전에, 나는 조지워싱턴대학교의 그라시엘라 카민스키(Graciela Kaminsky), 세계은행(WB)의 라틴아메리카·캐러비안 지역 수석이코노미스트 카를로스 베그(Carlos Vegh)와 함께 100여 개국의 전후(戰後) 재정 정책을 조사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 결과 우리는 선진경제의 재정 정책이 실질 국내총생산(GDP) 변동과 아무런 상관관계를 가지지 않거나, 혹은 불황일 때 정부 지출을 늘리고 호황일 때는 지출을 줄이는 식으로 실질 GDP 증감과 반대로 가는 경향을 띨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GDP 증감과 같은 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대부분의 신흥 경제권 재정 정책은 호황일 때 오히려 정부 지출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실업률이 높아질 때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게 아니라 완전 고용에 근접한 상태에서 정부가 지출을 늘린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호황일 때 정부 지출을 늘려버리면, 훗날 불황이 찾아왔을 때 정부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쓸 여력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 불황일 때 정부가 쓸 돈이 부족해 긴축 재정을 해야 한다면 가뜩이나 나쁜 상황을 더 악화시키게 될 것이다.

선진 경제로 분류되는 그리스나 스페인은 이 같은 신흥 경제권 재정 정책을 사용했다가 곤경에 처한 사례다. 정부가 성장률을 넘어서는 수준의 지출을 반복하는 바람에 국가 부채가 급증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리스의 정책 입안자들은 국가 경제에 계속해서 햇살이 비칠 것이기 때문에 비 오는 날을 위한 저축은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시계를 2018년의 미국으로 돌려보자. 경제학자들이 추정하고 있는 수조달러의 정부 적자는 미국의 재정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정확한 증거 중 하나다. 미국 사회는 고령화되고 있다. 지금은 미래를 위해 자원을 절약할 시점이지 마구 소비할 시점이 아니다. 물론 민주주의는 미래 세대를 위해 써야 할 소중한 자원을 현재의 유권자에게 과도하게 안기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 미국 정부가 내놓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재정 확대 정책은 미국 경제의 현 상황과 경기 순환 주기 어디에도 맞지 않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나 분석가들은 미국 경제가 최대 생산량에 이미 도달했거나 거의 도달했다고 본다. 이런 시기에 재정을 통해 경기 부양을 추구한다는 건 신흥 경제권에서나 볼 수 있는 잘못된 방법임에 명백하다.

최근에 미국 정부가 재정으로 경기 부양을 시도한 건 2009년이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회복과 재투자법안(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을 제정했다. 이 법안은 8400억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부양책 실시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다. 하지만 이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10%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은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릴 만한 분명한 이유를 제공했다.

1980년대 초 레이건 전 대통령의 세금 감면도 비슷하다. 당시에도 재정을 통해 경기 부양을 시도할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실업률이 치솟았고, 불경기였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인플레이션과 싸우고 있었다. 금리는 기록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당시 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은 31%였는데, 현재의 105%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경기 호황인데도 재정 투입해 경기부양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12월 이후 내놓은 경기 부양책들은 오바마 행정부나 레이건 행정부 때와는 달리 경기 순환의 원칙에 맞지 않다.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실업률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감세와 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 부양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내년까지 재정 적자를 1조달러 이상으로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관계자들이 향후 3년간 실업률이 3.5%를 약간 웃돌거나 완전 고용에 가까울 수 있다고 보는데도 말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출을 대폭 늘리고 있는데,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정책 금리를 올리고 있다. 재정과 통화 정책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결국 정부의 재정 적자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재정 적자가 늘면서 연방정부의 부채 총량도 증가하고 있다.

‘책임 있는 연방 예산위원회(Center for a Responsible Federal Budget)’는 2028년에는 예산의 14%가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를 갚는 데 사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세제 개혁은 필요한 일이다.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가 법인세율을 낮춘 것은 장기적으로 생산 증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익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제 개혁으로 생기는 비용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한다. 바람직한 전략은 세제 개혁과 정부의 지출 감소 정책을 동시에 펼치는 것이다. 반대로 세제 개혁과 지출 증가 정책을 동시에 실시하는 건 안 된다.

처음 이야기했던 나의 연구로 돌아가자. 우리 연구팀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부터 선진 경제의 사례들을 조사하면서 부채가 많을 때는 경제 성장이 둔화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부채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가중될 것이다. 미국 사회는 고령화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갈수록 경제 활동을 줄일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생산성은 낮아지고 노인들을 위한 지출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몇몇 정부 관료들은 외국 투자자들이 (미국 정부가 돈을 빌리고 발행한 차용증서인) 미국 국채를 선호하기 때문에 미국 경제가 안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참고로 미국을 제외한 세계 국가들은 6조달러어치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국채 발행량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의 미국 자본수지 흑자는 3조3000억달러에 달하지만, 이는 같은 기간 8조달러에 달했던 연방정부 적자보다 훨씬 적다.

외국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건 다른 선진국 국채보다 수익률이 좋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보호무역주의적 입장은 이런 흐름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무역수지 적자를 자본수지 흑자로 보전하는 것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의 비효율적인 경기 부양 정책은 미래 세대가 무언가를 하는 데 필요한 생산적인 자원을 남겨놓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경기가 호황인데도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미국의 재정 정책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그 대가는 미래 세대가 치르게 될 것이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베어스턴스 투자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