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계열사 웨이모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의 시험 모델. 사진 웨이모
구글 계열사 웨이모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의 시험 모델. 사진 웨이모

지난 5년간 미국 증시의 상승을 이끈 것은 미국의 대장 기술주를 대표하는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이었다. 우량주 중심의 S&P 500에서 이들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초창기 기술주 주도의 상승이 시작될 때에는 2000년도 초의 닷컴 버블과 비교하며 불안감을 가지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트렌드가 5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기술주 주도의 상승, 테크 랠리는 비단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으로 굳어졌다. 코스피 시총의 25%가 삼성전자이며, 중국 텐센트는 홍콩 항셍지수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2017년 이후에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등 다양한 외부 환경 변화에도 견조한 실적과 주가 상승 흐름을 이어 가면서 ‘기술주는 변동성이 크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는 듯 보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FANG 종목들에 내부 악재가 집중되고 있다. 페이스북의 경우 개인 정보 유출 스캔들로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지며 3월 한 달간 주가가 10% 이상 급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잊을만 하면 트위터에 아마존에 대한 추가 과세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테슬라는 자사의 전기 자율주행차 교통 사고와 리콜 소식으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구글은 유튜브 총격 사건으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고조되면서 사업 변동성까지 확대되고 있다. 연초만 해도 트럼프 정부의 법인세 인하와 경기 부양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2월 미국 주식 시장이 급락한 이후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


IT 기업, 미·중 무역 갈등 영향 적어

주가는 불안하지만 FANG 기업의 앞날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최근의 급격한 주가 변동은 미국 증시 전체의 고평가와 무역 전쟁, 긴축 우려 등 경제 전반의 요인에 의한 것으로 5년간 지속된 상승에 대한 조정으로 보아야 한다.

주가가 급등락하는 가운데도 FANG 기업의 신사업 계획이 연달아 발표되고 있다. 아마존이 신사업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기존 종목들이 하락하는 ‘아마존 공포’는 계속되고 있다. 아마존이 지난 2월 의약품 판매 진출을 발표한 날 CVS, 월그린의 주가가 5% 이상 급락했다.

이후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는 JP모건 체이스와 손잡고 금융 상품 출시 발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아마존 때리기에 나서고 반독점 규제 이야기까지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 아마존이 유통과 정보기술(IT)·제약·금융 등 다양한 업종에 진출해 기존 사업자들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애플은 내년부터 애플TV 등 자체 유통망을 통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와의 경쟁을 예고한 것이다.

미국의 기술 주도 성장은 펀더멘털에 기반을 둔 장기적인 트렌드다. 올 1분기 S&P 500 IT 기업의 88%가 애널리스트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기록했다. 최근 시장 전반의 변동성과 악재가 겹쳐 상승세는 주춤하지만, 중장기적인 실적 전망은 흔들림 없이 강하다. IT 섹터가 다른 산업에 비해 미국 경제의 부담 요인으로 꼽히는 금리 인상, 무역 갈등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하고 차입 규모가 큰 설비 사업의 경우 금리 인상은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항공 산업은 중국과의 무역 관계 냉각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다. 그러나 FANG 기업의 실적은 금리 인상과 무역 갈등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을 때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겉으로 보기와 다르다. 11월 상원선거 승리를 위해 본인의 당선 공약인 보호무역 어젠다를 부각시키려는 것이 중요한 목표로 보인다. 이를 위해 자유무역(FTA) 재협상과 대(對)중국 관세 부과 등 다양한 카드로 헤드라인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에 대한 제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건 미국의 일자리와 경제다. 이번에 발표한 중국 관세 부과 상품 중 미국 입장에서 수입이 필수적인 첨단기술 분야와 반도체 관련 품목은 빠졌다. 올해 초 시행된 법인세 인하와 각종 규제 완화에 재정정책까지 더해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과의 표면적 전쟁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전략이라는 의견이 많다.


암호화폐 투자세미나 너무 많아

FANG은 당당히 미국 경제를 이끄는 핵심 축이다. 각종 악재가 터지고 있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이들이 사업 확장과 이용자 수 확대를 넘어 이제 막 수익화(monetization)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본다. 이들이 가진 축적된 데이터와 시장 점유율을 무기로 본격적인 수익 창출에 나설 경우 현금흐름은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다.

2000년 초 닷컴은 말 그대로 ‘버블’이었다. 1990년대 말 상장된 인터넷 기업들의 주가는 2~3년 남짓 동안 수십 배 뛰었다. FANG은 다르다. 애플은 1979년, 아마존은 1997년 상장됐다. 20~30년간 장기적인 시장 사이클을 오가며 미국 시장의 핵심 기업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오늘도 FANG의 엔지니어들은 평온히 시장을 바꿀 다음 혁신을 준비 중이다. 최근의 주가 급등락의 원인을 FANG 기업의 문제보다는 미국 시장 전체의 고평가 우려와 투자심리 불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현재 시장의 버블은 다른 곳에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는 암호화폐공개(ICO·기업이 기술 등을 공개하고 암호화폐를 받아 투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와 암호화폐에 관련된 각종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사토시 모먼트(Satoshi moment‧비트코인에 몰입된 순간을 이르는 말)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블록체인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유망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다. 지난달 열린 미 의회의 암호화폐 규제 관련 공청회에서는 지난해 발행된 ICO의 약 30% 정도만이 발행인과 기관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와 함께 ICO를 IPO와 비슷한 것처럼 홍보하는 행위를 증권 사기(Fraud)로 규정하겠다는 가이드라인도 제시됐다. 여기에 구글이 암호화폐 광고를 중단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작년 말 2만달러에 이르렀던 비트코인 가격이 7000달러 수준으로 하락했다.

신기술에는 기회와 위험이 공존한다. FANG은 미국의 대장 기술주로서, 여전히 탄탄한 장기 전망을 자랑하고 있다. 개발자에게는 혁신이, 투자자에게는 안정이 중요한 시기다.


▒ 양연정
파이오니어스 인베스트먼트 대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공학,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MBA), 핌코(PIMCO) 미국 회사채 분석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