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무역 감소, 천연자원 가격 하락, 여행객 방문 중단 등이 겹치자 개발도상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글로벌 자금 시장이 개발도상국 주식과 채권을 팔고 안전 자산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협회(IIF)가 4월 발간한 ‘자금 흐름 보고서’에 따르면 4월에만 58개 개발도상국에서 830억달러가 빠져나갔다. 올해 말까지는 2160억달러 상당의 자금이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4월 11일(현지시각) 개발도상국이 코로나19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며 “국제통화기금(IMF)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방법 중 하나로 IMF가 특별인출권(SDR) 발행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IMF가 SDR을 확대 발행하기 위해서는 189개 회원국이 나눠 보유하고 있는 IMF 투표권 지분 중 85%가 필요하며 전체 투표권 중 17.45%를 보유한 최대 지분국인 미국이 승인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 SDR 발행을 반대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 경제 안정을 위해서라도 트럼프 행정부가 SDR 발행에 동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짐 오닐(Jim O’Neill)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서리대 박사,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짐 오닐(Jim O’Neill)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서리대 박사,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국제통화기금(IMF)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2021년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9조달러 이상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일본과 독일 경제 수준을 합친 것보다 높은 수치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진단, 치료, 백신의 개발에 달려 있다. 동시에 코로나19가 입힌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각국 정부가 국가 경제에 개입하면서 일부 국가의 부채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의 경우 GDP 대비 부채 비율이 2020년 연말까지 최소 20%포인트 증가해 155%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 코로나19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나라의 GDP 대비 부채 비율 역시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의 개발도상국은 국제 자본 시장에 대한 접근이 더욱 제한되면서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이들 국가의 국제 통화 보유량은 제한돼 있어, 의료 물자를 포함해 생명 유지와 관련된 상품과 서비스를 살 수 없는 지경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선 새로운 자원을 만들거나 동원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선 국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IMF에 ① 특별인출권(SDR·Special Drawing Rights) 발행을 요구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IMF가 최소 1조3700억달러어치의 SDR을 발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얼핏 보면 FT가 제안한 금액은 터무니없이 높은 숫자로 들릴지 모르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와 유럽 중앙은행(ECB)이 내놓은 파격적인 조치에 비하면 다소 적은 금액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SDR은 IMF 회원국들이 정해진 조건에 따라 IMF로부터 국제 유동성을 인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탈리아는 IMF 자본금의 3.17%를 보유하고 있기에 430억달러 규모의 SDR을 발급받을 자격이 있다. 이는 ② 유로안정화기구(ESM·European Stability Mechanism)가 정식 구조 프로그램을 통해 이탈리아에 빌려주기로 한 금액보다 많다.

IMF 체제에서 SDR은 1969년 처음 도입됐을 때 예상한 것과 달리 매우 제한적인 역할만 했다. 지금까지 SDR은 총 네 번만 사용됐다. 가장 최근에 SDR이 활용된 것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다. 당시 IMF는 약 2500억달러 상당의 SDR을 발행했다.


5월 6일(현지시각) 이탈리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전날보다 1444명 늘어난 21만4457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이탈리아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올해 연말 155%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EPA연합
5월 6일(현지시각) 이탈리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전날보다 1444명 늘어난 21만4457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이탈리아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올해 연말 155%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EPA연합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가 3월 워싱턴 DC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회복을 위해 대대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AFP연합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가 3월 워싱턴 DC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회복을 위해 대대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AFP연합

물론 새로 SDR을 발행할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확대된 국가별 경제 격차를 줄이기 위해 SDR을 어떤 기준으로 배분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한 국가가 IMF에 지불한 자본만큼만 SDR을 할당하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IMF의 순 부채 증가 없이 SDR을 발행할 수 있고 각국 정부는 IMF 지분만큼의 채권을 발행받아 재정을 확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재정 보유액은 430억달러에서 2150억달러로 증가할 수 있다. 이는 ESM이 보유한 대출 능력(5000억유로)과 비슷한 수치다.

미국과 중국 같은 경제 강국은 자국에 할당된 SDR을 다른 지역에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미국과 중국은 SDR을 유로화로 교환할 것이다. 그러면 SDR은 유로화 시세에 맞춰 맞교환되고 양국은 채권으로 벌어들인 이자로 수익을 거둘 것이다. 즉, 두 나라는 이자율 차이를 통해 무시할 수 없는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

문제는 SDR을 발행하려면 IMF 회원국 중 최소 85%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17.45%의 지분을 가진 ③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가 인류에게 막대한 부담을 준 것은 물론 세계 경제는 전례없이 위축된 상황이다. 게다가 앞서 제안한 SDR 배분 방식은 미국 국민에게 추가적인 세금 부담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안정적이고 건강한 세계 경제는 미국 국익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경제 안정은 현직 대통령의 재선에 득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Tip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행하는 유가증권으로 IMF 회원국이 외환위기 등에 처해 국제수지가 악화했을 때 담보 없이 필요한 만큼의 외화를 인출해 갈 수 있는 권리를 화폐처럼 발행해 주는 것이다. 현재 달러화,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위안화까지 5개 통화로 구성돼 있다. IMF 회원국은 출자 비율에 따라 SDR을 무상으로 배분받는다. 회원국 중 어느 한 나라가 국제수지 적자에 빠졌을 경우 할당받은 SDR을 외국의 통화 당국이나 중앙은행에 인도하고 필요한 외화로 교환한 뒤, 그 외화를 국제 결제 등에 이용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재정위기에 처한 회원국에 구제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비상기금으로 ‘유럽의 IMF’로도 불린다. ESM은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돈으로 스페인, 그리스 같은 유로존 구제금융 국가를 지원하는 자금줄 역할을 한다. ESM이 위기 국가에 지원할 수 있는 재원 규모는 5000억유로다.

미국은 IMF의 SDR 확대 발행에 반대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4월 17일 “SDR로 만들어진 자금의 70%는 대부분 유동성이 필요 없는 주요 20개국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미국 경제 전문 방송 CNBC는 IMF가 SDR을 확대 발행해 각국에 유동성을 공급하면 IMF 회원국인 이란에도 자금 지원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반대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