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석전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 PWM프리빌리지서울센터장
고준석
전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 PWM프리빌리지서울센터장

회사원 A씨는 정년퇴직을 하고 귀농을 감행했다. 그때 경매로 땅을 매입했다가 큰 손해를 입을 뻔했다.

그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평소 시골 생활에 관심이 많았다. 전원주택을 짓고 한두 가지 특용작물을 재배할 계획을 세웠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틈만 나면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던 중, 충청도에 소재한 땅(3100㎡)이 경매로 나온 것을 발견했다. 삼복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에 경매가 시작된 땅이었는데,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매각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 땅은 3차까지 유찰됐고, 4차 매각 금액은 최초 감정가(1억8000만원)보다 1억1826만원 떨어진 6174만원에 형성됐다.

A씨는 법원에서 조사한 현황조사서 및 매각물건명세서와 각종 공부(公簿)를 꼼꼼하게 살펴봤다. 등기부에는 1순위 근저당권, 2순위 가압류, 3순위 가압류, 4순위 압류순으로 공시돼 있었다. 등기부에 공시되는 모든 권리는 경매로 소멸하는 것으로, 매수인이 인수하는 권리는 하나도 없었다. 또한 등기부에 공시되지 않는 법정지상권이나 유치권을 주장하는 사람도 없었다.

여름에 찍은 사진을 통해 현장을 살펴보니 전형적인 시골의 수수밭이었다. 그리고 승용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폭 4m 정도 되는 도로가 땅에 직사각형으로 붙어 있었다. 땅의 지목은 전(田)이었고, 용도지역은 계획관리지역과 농림지역이 혼재돼 있었다. 다행히 땅은 용도구역 또는 용도지구 등으로 규제를 하지는 않았다. A씨는 마지막으로 현장 탐방을 통해 공부상의 내용과 일치 여부를 확인했지만,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밭에는 전부 수수가 심어져 있었고, 추수를 앞둔 상태로 보였다. 땅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 급기야 A씨는 4차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해서 최저 감정가 수준인 6499만원에 낙찰받는 데 성공했고,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쳤다.

A씨는 겨울이 시작될 무렵, 본격적인 귀농 준비를 위해 매입한 땅을 찾았다. 추운 겨울 날씨였지만 상쾌한 공기가 오감을 자극해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런데 추수가 끝난 땅을 직접 살펴보니 밭 한가운데 동그란 흙더미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1기의 분묘였다. 봄이 오면 고구마와 도라지를 재배하고, 천천히 전원주택까지 지을 생각이었는데, 그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경매로 땅을 싸게 매입한 것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경매에 참여할 당시에 현장 탐방을 했음에도, 꼼꼼하게 수수밭을 살펴보지 않았던 것이 무척이나 후회스러웠다.

그는 며칠간 머리를 싸맨 끝에 실패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아 나섰다.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대부분의 묘지는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이 인정될 수 있다고 했다. 분묘기지권이란 남의 땅에 세워진 분묘라도 오래된 것이라면 분묘와 주변 땅을 계속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권리를 뜻한다.

분묘기지권은 경매물건 중에서 땅의 지목(전, 답, 임야 등)과는 상관없이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최근 귀농·귀촌하는 사람이 늘면서 경매로 나오는 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땅에 묘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매수하면 곤란하다. 묘지의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면 그 땅은 어쩌면 영원히 사용, 수익 그리고 처분까지 제약을 받을 수 있다.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경우에도 일정한 조건에 맞으면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이 성립한다(대법원 4294민상1451 참조). 땅의 소유자가 다른 사람의 분묘를 임의대로 개장(改葬), 즉 옮길 수도 없다.

2020년 4월 말 기준 전국 부동산 경매 물건(1만4788건) 중 등기부에 공시되지 않는 특수권리는 17.5%인 2589건으로 나타났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분묘기지권 1471건(9.94%), 법정지상권 699건(4.72%), 유치권 419건(2.83%)순이다. 특수권리 중 분묘기지권이 유독 많다. 분묘기지권은 법정지상권이나 유치권과는 달리 땅에만 적용되는 권리다. 신한옥션SA에 따르면, 전체 경매물건 중 땅은 5613건으로, 분묘기지권(1471건)이 있는 비중이 무려 26.2%에 달한다.


땅에 묘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매수하면 곤란하다. 묘지의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면 그 땅은 사용, 수익, 처분까지 제약받을 수 있다.
땅에 묘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매수하면 곤란하다. 묘지의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면 그 땅은 사용, 수익, 처분까지 제약받을 수 있다.

경매 토지의 26.2%는 분묘기지권 있어

땅을 매수하는데 묘지의 존재를 모르면 분묘기지권에 관한 문제에 봉착할 수가 있다. 설령 묘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 분묘에 관해서 소홀히 대응했다가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여름철에는 울창한 풀숲때문에 묘지가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여름보다 겨울에 잘 보인다는 얘기다. 그런 탓에 여름에 땅을 매수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경매로 땅을 매수하는 경우에도 농작물 경작이 끝난 뒤에 땅의 현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겨울철에 매수하는 것이 좋다.

땅에 묘지가 있다면 분묘기지권의 성립 여부가 중요하다. 만약 분묘기지권이 성립한다면 매수인이 인수해야 한다. 분묘기지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첫째, 타인 소유의 땅에 분묘를 설치하고 20년 동안 평온·공연하게 점유해야 한다(대법원 2013다17292 참조). 다만,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일(2001년 1월 13일) 이후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없이 그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경우에는 관할 시장 등의 허가를 받아 분묘를 개장할 수 있다. 이때 개장을 하려면 미리 3개월 이상의 기간을 정해 그 뜻을 해당 분묘의 설치자 또는 연고자에게 알려야 한다. 둘째, 땅 소유자의 승낙을 얻어 분묘를 설치하는 경우다(대법원 2005다44114 참조). 셋째, 자기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자가 분묘에 관해서는 별도의 특약이 없이 토지만을 타인에게 처분한 경우(대법원 2015다206850 참조)에 성립하게 된다.

분묘기지권의 존속 기간은 당사자 사이에 약정이 있으면 그 약정에 따른다. 물론 분묘기지권의 존속 기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권리자가 묘지를 계속해서 관리하는 동안에는 분묘기지권이 존속한다.

만약 권리자가 오랜 기간 관리하지 않으면 토지 소유자는 묘지의 이전을 청구할 수 있다(대법원 81다1220 참조). 분묘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그 뜻을 공고해야 한다. 공고 기간 종료 후에도 분묘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화장한 후에 유골을 일정 기간 봉안처리해야 한다. 이때 이 사실을 관할 시장 등에게 신고해야 한다(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7조 참조).

실제 회사원 A씨의 경우 묘지를 합법적으로 개장했다. 다행스럽게도 동네 사람에게 확인해보니, 그 묘지는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연고 묘지였다. 그는 동네 어르신들과 상의한 끝에 묘지를 합법적으로 개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잠시나마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실패와 성공을 동시에 경험한 셈이다. 지금은 귀농해서 행복한 은퇴 생활을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