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나라 일의 ‘모든 것’은 아니다. 정치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 정치적 과정의 결과이자 주체인 국가 권력이 규칙을 정하고 개입하기 때문이다. 경제가 중요하다며 정치 현실을 개탄하기야 쉽지만 냉엄한 정치 현실에 눈 감고 떠드는 것은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미국 선거에서 경제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그것이 ‘선진국’의 징표는 아니다. 꽉 짜인 사회에서 달라질 것이 경제밖에 없는 미국 나름의 사정일 뿐이다.

 경제의 어려움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한편에는 이 땅에 질곡을 바로잡고 무너진 정의를 세우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는 현존하는 경제 구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특히 덜 가진 자들의 희생을 강요했던 불평등 구조에 대한 한숨이 서려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검증되지 않은 이상론으로 엄중한 현실을 마구 재단하니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사람들이 있다. 반기업적·반시장적 정책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다양한 ‘개혁’의 목소리들 속에는 우리 경제와 사회, 이를 둘러싼 세계 관계에 대한 본질적 부정이 들어 있고 이것이 불안의 뿌리라는 얘기도 한다.

 대립이 이쯤 되면 “성장의 그늘을 돌아보고 숨을 고르는 것도 필요하다” 정도의 얘기는 설 자리가 없다. 현실의 정파적 이해는 이런 ‘당위’를 넘어 더 복잡하게 엉켜 있으니 더욱 심란하기만 하다. 덜 가진 자의 설움도, 가진 자의 사연도 어떻게든 한번 잘 살아 보자고 몸부림치던 시절의 유산이다. 싸움만 하는 국회라고 하지만 뒤집어 보면 어느 한쪽도 자기 맘대로만 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2004년 가을, 한국의 현실이다. 경제가 삶의 현실이라면 정치도 현실이다. 제아무리 몸부림쳐도 우리 경제는 이런 현실 속에서 몇 가지 합의된 답만을 놓고 풀어 갈 수밖에 없다. 세종대왕이 부활해서 정약용과 함께 나서도 마찬가지다.

 깊은 성찰과 현실 인식에 입각한 ‘건강한 대립’이라면 답을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막연한 감성에 영합한 대중 선동이 지배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아는 것 다 꺼내 놓고 떠보려는 얼치기 전문가들과 가슴이 답답한 대중이 잘못 만나면 배는 산으로 간다. 우리는 어떤가? 투자와 고용의 부진은 국가적 자원 동원 모델의 한계를 보여 준다. 수익성 위주의 경영, 방만한 투자와 부채의 축소, 자기 지분 확대와 기업 지배 구조 개선은 ‘재벌’과 ‘관치’로 상징되는 과거 성장 모델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외환 위기로 밑천이 드러났고 외국 돈을 써야 하니 돌이키기도 어렵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 애매한 규제들 속에서 기업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견제가 대중적 감성에 의해 증폭되는 것을 뻔히 보면서 경영권 위협까지 안고 운명을 건 투자를 결심할 경영자는 없다.

 ‘기업 입장’을 얘기하는 분들도 떳떳할 것 없다. 이념 편향과 반기업 정서를 개탄하는 분들, 말로 자리 값은 했을망정 문제 해결의 노력은 못 된다. 지난 20년간 어떤 고민을 얼마나 치열하게 했으며 제대로 바로잡으려 무슨 노력을 했는가? 정치 지도자들에게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경제 안팎의 상황은 어렵고 현실은 냉정하다. 투자든 취업이든 창업이든 눈높이를 낮추고 견딜 수밖에 없다. 전쟁에도 돈 버는 사람은 있으니 낙담만 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무엇을 지불할 것인지를 냉정하게 논의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고 지켜 가는 노력이 그 다음이다. 맥 빠진 결론이지만 어쩔 수 없다. 처지와 능력을 자각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