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의 계절감을 좋아하는 이유는 돼지가 더위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수십 년 만에 겪은 더위로 수술 중인 돼지의 호흡과 심장이 멎어 버린 사건이 있었다. 죄책감과 허탈감으로 여름을 보내야만 했다.

 돼지를 잃고 나서 ‘에어컨은 아니더라도 천장에 선풍기 몇 대는 달아 줬어야 했는데’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여름만 그런 게 아니다. 겨울에는 배아가 추위에 노출되어 얼어 죽지 않게 하려고 품속에 넣어 보존해야 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 최근 희망이 생겼다. 정부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되는 국내 과학자 10명을 ‘국가 최고 과학자’로 선정해 연구비 및 연구시설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키로 했다. 우리 팀도 이 혜택을 받게 됐다. 연구비 15억 원과 시설비용 등 265억 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그렇게 지어지는 연구소에는 원숭이 등 영장류 실험실과 무균 미니 복제 돼지 사육시설, 복제 소 실험 목장 등을 갖추게 된다. 수술 중에 더위로 돼지를 죽게 하는 안타까움도 없을 것이고 추위 때문에 배아가 얼게 될 일도 없을 것이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얼마 전 미국의 한 주정부로부터 1조 원 이상의 연구비 지원을 조건으로 미국에서 일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내 연구 결과는 국가적 차원에서 활용돼야 한다”며 거부했다. 내가 언론에 나올 때 나의 이름과 서울대 교수라는 직함이 동반된다. 하지만 ‘코리아’가 나올 때 더 자부심을 느낀다. 후배 과학자들에게 “과학은 글로벌화돼 있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러면서 후배 과학자들에게 일주일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이런 나에 대해 한편에서는 중증 ‘워커홀릭’이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애국자라고 말한다. 그들이 어떤 말을 해도 좋다. 지난날 선배들은 조국 근대화를 위해 새마을운동을 일으켰고, 수출 입국의 과정에서는 대통령이 정기적으로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주재했다. ‘죽기 살기’ 정신으로 달려온 자랑스러운 과거며, 선배들의 노력이다. 그런 땀과 열정을 나는 과학으로 잇고 싶다.

 앞으로 바이오 이종(異種) 장기(臟器) 시대가 개막되면 세포 치료에 의한 난치병 개발 등 생명 공학 기술 분야가 발전하게 될 것이다. 나는 생명 공학만큼은 우리나라가 선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이오산업은 IT산업 이후의 차세대 과학 분야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공할 만한 파워를 갖고 있다. 수익성이 높고 보건·의료, 농업, 식품, 환경 등으로 응용이 가능한 고부가가치 미래 산업이기 때문이다. 바이오 연구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국가적 추진력을 가동시켜 10년 후의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인간 복제 등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분이 계시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 복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세계 최초의 복제 양인 돌리도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고, 다른 실험용 복제 동물들에게서도 심장과 면역 체계 등의 결함이 자주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복제 인간에게도 각종 결함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더 중요한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복제는 전면 금지돼야 한다. 하지만 치료 목적인 연구는 계속 돼야 한다.

 모임에 가면 간혹 건배 제의를 받는다. 나는 서슴없이 이렇게 말한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20세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정보통신 혁명이 일어나 세계를 이끌었다면, 21세기는 한국에서 생명 공학의 싹을 틔어 인류 행복의 새 장을 열자”고.

  21세기 바이오 혁명을 서울에서 발원시켜 한민족이 일등 국민으로 당당한 대접을 받게 되는 그 날을 향해서 나는 바이오 연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