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창렬이다.” “맞다. 정말 창렬스럽다.”

얼마 전 한 TV 오락프로그램에 왕년의 인기 가수 김창렬이 출연했다. 중고차 시세를 말하는데 자기 이름 넣어 “가격이 창렬이다”고 넉살을 떨었다. 다른 출연자도 맞장구쳤다. ‘창렬스럽다’는 편의점 유행어의 원조격이다. 2009년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즉석식품 ‘김창렬의 포장마차’ 시리즈를 내놨다. 값에 비해 맛과 품질이 미흡해 급기야는 소비자들이 ‘창렬스럽다’는 유행어를 생각해냈다. 처음엔 소송도 불사했던 김창렬이 이젠 천연덕스럽게 그 유행어를 구사하며 자기 홍보에 나선다. ‘창렬스럽다’는 ‘창렬 식품’ ‘창렬 경제’ ‘창렬 푸드’ 같은 파생어와 반대말 ‘혜자스럽다’를 낳으며 유통산업 뉴트렌드와 맞물려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혜자스럽다’는 세븐일레븐의 편의점 경쟁업체인 GS25에서 탤런트 김혜자를 모델로 선보인 도시락에서 유래됐다. 가격 대비 맛과 품질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또 다른 편의점 업체 CU는 집밥 요리 열풍을 몰고온 백종원을 모델로 한 도시락을 선보였다.

‘창렬 사태’를 겪은 세븐일레븐은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여주인공 혜리를 모델로 한 ‘혜리 도시락’으로 판세 뒤집기에 나섰다.

유통산업은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산업이다. 유통업계 핫이슈는 골목마다 벌어지는 편의점 전쟁이다. 1980년대 후반 국내에 도입된 편의점이 이젠 전국에 점포 3만개가 넘는 작년에도 하루 15개꼴로 편의점이 생겨났다. 점포수가 가장 많은 CU와 GS25는 올 상반기에 점포수가 각각 1만개를 넘었다. 편의점 업체마다 얼마 남지 않은 골목 상권을 찾아다니느라 경쟁이 치열하다.

편의점 상승세는 인구 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다.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 혼술족(혼자 술 마시는 사람)이 늘면서 ‘혼술남녀’란 TV 드라마도 최근 방영됐다. 2015년 인구 센서스에서 처음으로 1인 가구가 2·3·4인 가구 비중을 앞질렀다. 주머니 가벼운 신세대들이 가격 대비 품질 좋은 제품을 즐겨 찾으니 유통업계에서는 편의점과 온라인 매출만 성장세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센터가 2010년과 2015년 3~5월 카드 결제를 많이 한 70만명을 분석했더니, 카드 사용액 기준으로 유통의 3대 강자인 백화점·대형마트·홈쇼핑 점유율이 5년 새 15%포인트 감소했다(46.131.1%). 온라인 쇼핑몰과 편의점 점유율은 13.4%포인트 증가해(30.143.5%) 유통 3인방을 추월했다. 이 빅데이터에 따르면, 편의점 이용객 셋 중 하나(32.5%)가 28~37세 남성이다. 수입 맥주가 최근 맥주시장에서 점유율을 급속히 높인 이유도 젊은 남성이 즐겨찾는 편의점 유통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다 보니 경기침체에도 편의점의 인기 소비재 위주로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고전하는 외식업계와 달리 나홀로 성장세다. 3000원대 중후반에서 4000원대 초반 가격으로 한 끼 해결할 수 있으니 매출이 매년 50% 가까이 늘어난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저성장 사회로 접어든 일본서도 나타난 현상이다. 일본 편의점의 PB브랜드 식품이 워낙 다양하게 개발돼 인터넷에는 ‘일본 여행 가면 세븐일레븐에서 꼭 먹어봐야 할 추천 식품’ 같은 리스트가 나돌 정도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추세로 간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상징되던 편의점 간편식이 도시락 전쟁으로 바뀐 데 이어, 디저트와 커피 전쟁으로 확산 중이다. 비싼 디저트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마카롱도 편의점용이 나왔다. 지갑 열 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따지는 20, 30대 소비자들이 디저트 문화를 즐기기 때문이다. 누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읽느냐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나는 건 동네 편의점도 예외는 아니다.

강경희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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