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게으름을 향유할 권리는 집안에 돈이 많은 부자들의 몫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괜찮은 임금과 근로 조건, 실업급여, 장애보험, 보편적 의료 등을 누리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개념은 ‘저주’로 인식됐다. 이 제도가 처음 제안됐을 때 사용자 단체, 노동조합, 경제학자는 물론 정치인들까지 반대했다.

최근 기본소득 이슈가 급진 좌파(녹색운동권)를 비롯해 자유주의 우파를 중심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혁명으로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란 두려움이 커진 탓이다. 하지만 우파와 좌파 양쪽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크다.

우파는 기본소득 정책을 현실화할 충분한 재원 마련이 불가능하며, 기본소득 제도는 노동 공급 부족과 생산성 저하를 야기해 작업 능률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좌파는 기본소득 제도가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자영업자처럼 착각하도록 만들어 노동단체교섭권을 손상한다고 본다. 또 국가가 돈을 주는 대신 복지 서비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복지 국가의 기초를 훼손한다고 판단한다. 

반면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기본소득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사회적 기여를 하는 사람들을 지원한다고 주장한다. 가정을 돌보는 여성, 공공예술가가 대표적이다. 특히 최근 떠오르고 있는 보편적 기본소득 정책 아이디어는 세 가지 전제 조건이 핵심이다. 세금은 기본소득의 재원이 될 수 없다. 기계의 발달은 수용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선택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다.

기본소득을 합법화하려면 재원은 세금이 아니라 자본이득으로 충당해야 한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내는 소득세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호의호식하는 것을 용납하기는 힘들다.


세금으로 기본소득 지원은 안돼

사람들은 정부 과세 이전에 형성된 부(富)는 개인 소유란 편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부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든 것이다. 부가 힘 있는 사람에 의해 분배되는 게 문제다. 오늘날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정부 보조금을 받아 개발한 기술이나 공공 개방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기업이 창출한 부가 해당 기업만의 노력으로 나온 게 아니란 뜻이다.

기업은 사회에 보상해야 한다. 일반인들도 대기업의 주식과 배당금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 배당금은 기업 자본에 대한 사회의 투자를 반영한다. 이를 보편적인 기본배당이라고 부르자. 하지만 국가와 사회적 자본이 개별 기업에 기여한 정도를 정확히 계산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적 메커니즘에 따라 공공이 소유해야 할 기업의 주식 총수를 결정해야 한다. 쉽게는 기업공개를 할 때 기본배당에 해당하는 주식의 비율을 법으로 정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보편적 기본배당은 복지수당·실업급여와는 별개로 취급돼야 한다. 기본배당이 복지국가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를 완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사회 안정과 공유·번영의 개념을 되살려 지금까지 합의가 불가능했던 정치적 진영 사이에 다리를 놓을 것이다.

기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버려야 한다. 기계는 사람들을 단순 노동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다만 이는 기계가 기본적 보편 배당을 만들어 내 인간의 공유 번영에 기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아테네 대학 경제학과 교수, 영국 노동당 정책고문, 미국 밸브소프트웨어 수석이코노미스트, 영국 에섹스대학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