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최근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최근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수십년 동안 글로벌 경제 성장을 견인해 온 국제 무역체제에 근본적인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의 보호주의 무역정책은 전 세계 무역체제를 위협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무역질서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급국가(middle power)’ 때문이다. 중급국가는 국내총생산(GDP)은 적지만 국제적 영향력을 갖춘, 강대국과 약소국의 중간에 위치한 나라를 뜻한다. 전 세계 중급국가들이 협력하면, 트럼프의 반세계화와 반무역주의 후폭풍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법을 기반으로 한 진보적 무역 의제를 발전시켜, 국제 협력 유지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하겠다고 공약했다. 나아가 그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재앙’이라고 칭하며 국제 질서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이는 중급국가들이 원치 않는 교역 갈등을 촉발할 것이다. 

트럼프를 억제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성향을 감안할 때 미국은 냉정하고 단호하게 협상에 임할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 때문에 미국 경제가 후퇴했다고 믿고 있다. 또 중국은 미국과의 경제 대결을 장기적으로 감당할 수 없으며, 유럽연합(EU)과 일본은 국방 측면에서 미국에 무임승차하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미국의 비용으로 다른 국가들이 이득을 본 것처럼, 미국을 다시 ‘강국’으로 만들려면 이웃 국가가 희생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트럼프, 보호무역 후폭풍 알지만 멈추지 않을 것

트럼프는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를 EU를 흔들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그는 영국에 유리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방법으로 EU의 분열을 조장할 것이다. 영·미 FTA를 본 다른 EU 회원국들은 미국과 FTA를 하는 것이 EU 테두리에 있는 것보다 낫다는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이 같은 조치가 상당한 비용을 초래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일부 제조업체들이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이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는 상대적이다.

세계화와 자동화로 생산성이 좋아져 줄어든 일자리와 비교한다면, 트럼프의 보호주의 정책으로 만들어질 일자리 수는 턱없이 적을 것이다.

트럼프 계획대로라면 미국은 양자 간 무역 거래 규칙을 위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은 WTO에 소송을 당할 것이고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모든 소송에는 시간이 걸린다. 소송이 진행되는 사이에 미국은 일시적으로 이익을 볼 것이다. 그러나 법적 기준으로 보자면 장기적으로는 손해에 가깝다. 원래 성숙한 법률 구조를 가진 국가가 더 나은 무역파트너가 된다.

강하고 믿을 수 있는 법률 집행기관은 사회의 부패를 낮추고, 계약의 신뢰도를 높이며 관료적 회색지대를 줄인다. 영국 보수당의 도미닉 그리브 전 법무장관은 “세계 무역에서 법치를 고수하고, 끊임없이 검토하며 갱신하는 국가들이 앞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교역 규모가 적을수록 무역을 지원하는 법률 체계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위협하는 법률 기반 교역 시스템을 바로 세우려면 중급국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는 2018년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가 캐나다와 아르헨티나에서 예정돼 있다. 두 회의에서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트럼프가 무역정책을 바꾸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23일 백악관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계획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 :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23일 백악관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계획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 : 블룸버그>


캐나다·아르헨티나의 역할 중요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트뤼도 총리는 내년 정상회담에 앞서 주요국가 간 무역 및 규제 협력을 장려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캐나다는 얼마 전 EU와 포괄적경제무역협정(CEPA)을 맺었으며, 중국과는 양자무역협정(FTA)을 논의 중이다. 이는 캐나다가 다시 한 번 국제무대에서 진보세력으로 기능할 것임을 시사한다. 캐나다 경제는 무역 의존도가 높고, 국제 교역 규칙을 통해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다. 즉 캐나다 정부가 세계 무역 질서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내년 G20 회의에서 의장직을 맡게 된다. 마크리 대통령은 이에 앞서 아르헨티나의 국제적 이미지를 회복하고,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중국·EU와의 관계 강화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아르헨티나와 캐나다가 협력해 행동에 나선다면, 트럼프의 보호주의 정책으로 발생할 경제적 타격을 억제하고, 경제적 보복의 영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국제금융기관과 WTO가 보호무역주의에 강력한 대응책으로 기능하고 있다. 미국 기업인들도 나서야 한다. 백악관이 국제 무역과 국제 협력의 이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업인들이 앞장서 통합 거래 시스템의 이점과 세계 지적 재산권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발 국제 무역 파탄을 막는 데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은 보호무역주의로 잃을 것이 많은 중급국가들이다. 이들이 성공한다면 국제 경쟁력의 중심에 국제법이 존재하는, 포괄적이면서도 진보적인 무역 체제가 전 세계에 자리잡을 것이다. 반대로 이들이 실패한다면, 트럼프의 승리는 전 세계의 패배로 돌아올 것이다.


▒ 우나그 피츠제럴드 Oonagh Fitzgerald
캐나다 법무부 안보조정관, 국방부 법률고문

▒ 헥토르 토레스 Hector Torres
세계무역기구(WTO) 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