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 경기가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도 유럽 경제는 여전히 불안해 보인다. 이는 유럽 경제가 ‘비대칭적 경기 호황기’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호황기에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회원국 대부분이 이득을 누리지만, 거품이 꺼지는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다. 리스크 회피 성향의 글로벌 투자 자금이 특정국에 몰리는 쏠림현상 때문이다. 글로벌 자금들은 위기가 닥치면 재정 건전성이 취약한 나라에서 강한 나라로 재빠르게 이동한다.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 근본적 문제 해결 안 돼

이 같은 논리를 뒤집어 보면, 과거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데자뷔가 떠오른다.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서 한 나라의 이익은 다른 나라의 손해로 이어진다. 이는 유로존 국가 간 협력을 저해하고 정치적 긴장을 조장할 것이다. 이는 각국 국내 정치의 변수가 될 것이며, 유로존의 분열을 촉진할 것이다.

물론 유럽연합(EU)이 지난 경제위기에 대응해 실행한 구조조정으로 유럽 경제와 관련한 전반적 상황은 개선됐다. 그러나 이는 유로존의 근본적인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EU를 중심으로 일관된 규칙을 만들어 재정 통합을 이루고자 했지만, 유로존 각국의 기초 재정 상태가 제각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각국이 추진한 금융 부문 개혁도 이와 마찬가지다. EU는 일관된 정책을 제시하려고 했지만, 위기에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한 것 같다.

유럽은행연합(Banking Union)은 지난 위기 때 공공 부채가 쌓인 국내 은행 부문의 부실을 감췄고, 유로존 각국의 금융 감독 기능은 국가 차원에서 EU 차원으로 격상됐다. 유럽의 금융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 구제금융은 채권 금융기관의 보석금으로 대체됐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앞으로 닥칠 금융위기 때 정부 구제금융의 기능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위기에 대한 두려움은 시장 반응을 증폭시킨다. 아울러 유럽의 새로운 위기 관리 도구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5000억유로(약 603조원) 규모의 유럽안정기구(ESM)가 다음 위기가 닥쳤을 때 지금보다 더 나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무제한 국채매입(OMT)’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OMT 프로그램은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유럽 재정위기가 정점을 찍었던 2012년 발표한 정책으로, 구제금융에 합의한 회원국이 요청하면 해당국의 국채를 일반 유통시장, 즉 증시에서 무제한 사들인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정치적으로 구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ECB가 2012년 9월 이 프로그램을 제안했지만, 실현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OMT는 ESM과 마찬가지로 조건부이기 때문에 채권금융기관과 채무기관 사이에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ECB의 2차 공적자산매입 프로그램은 유럽 불균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ECB는 유로존 각국이 보유한 ECB 자본 비율에 따라 국채를 매입할 것이기 때문에 공적자산매입 프로그램 자체가 곤경에 처한 국가에 혜택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럽중앙은행(ECB) 본부 빌딩에 켜진 유로화 기호 조명. <사진 : 블룸버그>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럽중앙은행(ECB) 본부 빌딩에 켜진 유로화 기호 조명. <사진 : 블룸버그>

공공 부채 탕감 위한 다른 방안 모색해야

재정 부채 규모가 큰 국가들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추진하기 힘들다. 지난 위기 때 일부 유럽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의 5% 이상을 미납 부채에 대한 이자로 지불해야 했다. 시장 혼란이 잦아든 후 ECB가 관련 금리를 인하했지만, 이들 국가는 여전히 매년 GDP의 3~4%에 이르는 돈을 공적자산매입 프로그램 미납 부채 이자로 내고 있다. 현재 이들 국가 대부분의 재정 상태는 부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미납 부채라는 것은 마치 죄수복과 같아서 경기 호황기에 올라탈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고, 위기 상황에는 피해를 키운다.

공식적 부채 구조조정이 비효율적인 초국가적 재정 정책의 대안으로 제시되고는 한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지금과 달리 시장 감독이 정치적 감독을 대신할 것이다. 물론 부채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재정적으로 취약한 일부 국가들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다. 리스크 회피성 글로벌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유로존은 공공 부채 탕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량자산을 담보로 발행된 커버드 본드를 매입하는 공적 자산매입 프로그램은 ECB가 2011년 11월 첫 도입했다. 장 클로드 트리셰 당시 ECB 총재가 유럽 금융기관들의 신용 경색을 막기 위해 제시했다. 드라기 총재 취임 후 중단됐으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 재정 취약국들의 요구가 계속됐고, 공식 명칭과 자금조달 방법을  바꾸어 재개했다. 이후에 ECB는 유로존 재정 취약국의 국채를 지속적으로 매입했다. 공적자산매입 프로그램은 ECB와 각국 중앙은행이 구매한 국채에 대한 본국 송환을 허용한다. 그러나 ECB가 공식적으로 각국 정부 국채를 일정 금액 이상 매입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이자 절감 효과는 미미하다. 이 한도를 없애면 기존의 제도적 틀 안에서도 일부 국가의 재정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ECB는 현재 하고 있는 일보다 좀 더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유럽집행위원회와 같은 독립 기관도 저축 자금이 각국에서 생산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 베네딕다 마지노트 Benedicta Marzinotto
런던정경대 경제학 박사, 유럽집행위원회 이코노미스트,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겔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