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번째 입법 과제로 내세웠던 이른바 ‘오바마 케어 폐지’는 사실상 무산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원내 공화당 의원들이 의료 개혁의 복잡성에 대해 무지했던 탓이다. 오바마 케어는 2014년 1월부터 시행된 전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실 이 제도는 시작부터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시도한 개혁이라는 것이 2400만명 미국인이 누리고 있는 기초건강권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실패가 예견돼 있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공화당은 2018년에 열리는 중간선거에서 이에 대한 책임 논란으로 참패했을 것이다.

오바마 케어 개혁에 실패한 트럼프와 공화당 의원들이 다음 단계로 조세 개혁을 추진 중이다. 이 개혁은 법인세에 이어 개인 소득세를 단계적으로 인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조세 개혁의 실현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공화당이 처음 발의한 법안대로 하면 수조달러에 달하는 재정적자가 예상될 뿐만 아니라, 조세 개혁 혜택의 99%가 상위 1%에 쏠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미 하원에 법인세를 현행 35%에서 15%로 낮추고 국경조정세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 법안은 제안과 동시에 사문화됐다. 국경조정세는 공화당 내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무역기구(WTO)의 규범에도 어긋난다. 공화당이 발의한 감세안대로라면 미국 정부는 향후 10년 동안 약 2조달러의 세수가 줄어든다. 나아가 현재로서는 건강보험 개혁이나 국경조정세 도입으로 세수부족분을 보충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폴 라이언(공화당) 미국 하원 의장이 지난 2월 28일 기자회견에서 국경조정세와 관련한 문답을 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폴 라이언(공화당) 미국 하원 의장이 지난 2월 28일 기자회견에서 국경조정세와 관련한 문답을 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미 공화당 감세안, 2조달러 세수 부족 초래

공화당은 세 가지 이유에서 감세 정책을 강행하지 않을 것 같다. 첫째,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재정 정책에 있어 보수적이다. 공화당은 감세로 인해 공공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미 국회 예산법에 따르면, 다른 수입이나 지출 삭감으로 충당되지 않는 세금 감면 정책은 10년 안에 일몰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화당 예산안이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은 감세와 함께 군사 및 인프라 재정 지출 확대를 골자로 한다. 재정 지출 확대는 공공부채 증가와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주택처럼 금리에 민감한 산업 투자는 줄어들 것이며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화 가치 상승은 일자리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주요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 유권자에게 일자리 확대를 약속해 왔다. 나아가 공화당이 공공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방치한다면, 시장 불안이 확대될 것이며 미국 경제는 이로 인해 휘청일 것이다.

따라서 공화당은 부채를 일으키기보다는 세수 확보를 통해 감세분을 메우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화당이 주장하는 감세 정책은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법인세율을 35%에서 30%로 줄이는 것도 어렵다. 공화당은 현재 세금을 거의 내고 있지 않는 글로벌 제약업계나 기술기업이 세금을 내도록 과세 표준을 확대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법인세율을 30% 이하로 유지하려면 이들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는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 해외에서 미국으로 현금을 들여올 때 부과하는 10% 송금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해 주겠다고 공약을 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수입은 약 1500억~2000억달러 수준으로, 공화당의 당초 감세안에 따른 세수부족분(약 2조달러)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송금세 면세에 따른 세수 확보분은 사회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재정지출이나 인프라 은행 조성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국경조정세가 당초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눈치챈 원내 공화당 의원들은 법인세 감세분을 메울 수입원으로 부가가치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나 이 옵션 역시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 공화당 당론으로 부가가치세 확대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공화당 내에서 ‘반(反)부가가치세’ 의원 소모임(코커스)이 있을 정도다.


개인소득세 손대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

공화당은 부가가치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부가가치세처럼 ‘효율적’인 세금은 손쉽게 늘릴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손대기 시작했다가는 방만한 정부 지출을 막을 수 없다는 논리다. 공화당은 유럽 각국을 포함해 부가가치세율 20%가 넘는 국가를 ‘잘못된 사례’로 지목해 왔다. 민주당 역시 부가가치세에 반대하고 있다. 부가가치세는 과세대상에 상관없이 일정한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민주당은 과세할 대상이 증가하면 세율이 줄어드는 ‘역진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본다. 식료품과 같은 기본 재원에 대한 과세를 제한하거나 할인하는 것으로 이 같은 ‘역진성’을 완화할 수 있지만, 이 논리는 공화당을 설득하기 어렵다. 이 같은 정황을 감안할 때 부가가치세 도입은 국경조정세와 마찬가지로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

개인소득세를 개혁하는 건 더 어렵다. 트럼프와 공화당 지도부는 당초 향후 10년 동안 5~9조달러를 들여 소득 상위 1%에 대해 75%의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봤을 때 ‘자살’에 해당하는 공약이다.

현재 공화당은 앞서 제시한 초기 개혁안 대신 소득 중립적 감세 조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불가능해보인다. 모든 소득 분위의 사람에게 중립적인 감세 정책을 도입한다는 것은 다양한 면세 혜택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과세표준을 대규모로 확대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조치는 정치적으로 절대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주택 담보 대출에 대한 이자 공제 혜택을 없애면 미국 주택시장은 폭락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중산층과 저소득층 근로자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인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자는 이 방법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공화당은 현실을 무시한 채 공급 측면의 낙수효과(trickle down)를 노린 조세 정책이 옳다고 자기 위안을 할 것이다.


▒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미국 재무부 이코노미스트, 미 백악관경제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