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이승범>
<일러스트 : 이승범>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나온 것 중에 낯설기도, 낯익기도 한 것이 ‘100일 공약’이었다. 성격 급한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 내내 쏟아냈던 공약을 취임 100일 내에 시행하겠다고 했다. 이른바 ‘100일 계획’이다. 그런 약속을 했으니 취임하자마자 무지하게 정책 이행에 속도를 냈다. 트럼프의 ‘100일 계획’이 한국식 경제 정책에서 본 듯해 낯익기도 하지만, 정부가 목표를 내걸고 일사천리로 경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게 한국 아닌 미국서도 통한다는 사실이 낯설기도 했다.

그런 식의 ‘100일 계획’이라면 한국이 원조격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 취임하자마자 박재윤 경제수석을 통해 ‘신경제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 군사작전 펴듯 전격적인 조치였다. 신경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실시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보고 새로운 경제 정책을 추진한다는 취지로 붙인 이름이었다. 경기 부양책이었다. 7대 중점 과제에, 50대 세부 과제를 정하고 속도전으로 밀고 나갔다. ‘신경제 100일 계획’의 후속 조치로 신경제 5개년 계획도 내놨다. 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 같은 충격적인 구조개혁이 진행됐다.

예고편 격인 ‘신경제 100일 계획’, 본편 격인 ‘신경제 5개년 계획’으로 이어지는 김영삼 정부의 경제 정책으로 한국 경제가 양적 팽창은 이뤘다. 1995년 사상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섰다. 경제성장률 역시 1992년 6.2%에서 1993년 6.8%, 1994년 9.2%, 1995년 9.6%, 1996년 7.6%로 높아졌다. 하지만 금융 회사의 외채 차입 빗장을 풀어주는 바람에 총외채 가운데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외채 비중이 50% 가까이로 불어났다. 원화 강세 덕에 1인당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는 있었지만 저환율 정책으로 경상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100일 계획으로 출발한 신경제는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그 성과를 논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빛이 바래고 말았다.


중국에 공약 부담 떠안겨

성격 급한 트럼프는 ‘100일 내 공약 달성’에 이어, 지난 4월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마라라고 정상회담’에서 중국에도 ‘100일짜리 숙제’를 줬다. 이른바 미·중 간 무역 불균형 해소 방안을 100일 내에 마련하는 ‘100일 계획’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앞으로 협상을 해봐야 한다”면서도 “중국과 100일 계획 마련에 합의한 것은 상전벽해와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아직 미·중 간 100일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풀겠다고 약속한 공약 부담을 상당 부분 중국에 숙제로 떠안긴 셈이다.

미국의 목표는 대중 무역 적자를 줄이고 대중 수출을 늘리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총 5005억달러의 무역 적자를 냈다. 이 중 62%(3097억달러)가 중국과의 교역에서 생겼다. 대중 적자만 줄여도 무역 불균형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대중 무역 적자를 언제까지, 얼마나 줄일지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으니 미국이 자동차·농산물·원유 등의 대중 수출을 늘려달라고 중국 측에 요구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단 미국과 중국이 ‘100일 계획’에 합의한 덕분에 미국이 중국을 당장이라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현격히 낮아졌다. 미국 재무부가 4월 중에 환율보고서를 작성해 의회에 제출할 예정인데 중국이 미국과의 100일 계획 마련에 착수함에 따라 적어도 이번에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줄어든 것이다. 예단하고 안심하긴 힘들지만 한국도 시간을 벌었다고 볼 수도 있다. 여하튼 트럼프의 ‘100일 계획’이 성과를 낼지, 아니면 그저 초반에 요란하기만 했지 성과 내기 힘든 ‘100일 천하’로 끝날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