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6일 이슬람 6개국 국민의 입국을 90일간 제한하는 내용의 수정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 :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6일 이슬람 6개국 국민의 입국을 90일간 제한하는 내용의 수정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 : 블룸버그>

1961년 공상 과학 소설 ‘낯선 땅의 이방인’에서 로버트 하인라인은 이슬람 언어학자인 ‘마흐무드 박사’를 통해 화성에서 자란 주인공의 삶이 미국에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낯선 땅의 이방인’은 소설이지만 하인라인이 이슬람 통역관을 선정한 것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실제로 중동과 북아프리카계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혁신과 연구의 ‘번역자(translators)’ 역할을 해왔다.

최근 필자는 오스트리아 공과대학의 게오르그 자라드니크, 베른하르트 다스 연구원과 함께 미국의 특허 데이터를 조사해 아랍·쿠르드족·페르시아·터키계 조상들이 미국 기술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밝혀냈다. 연구는 이슬람 6개 국가(이란·리비아·소말리아·수단·시리아·예멘)의 국민들을 입국 금지 조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계기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는 놀랍지 않다. 하지만 미국이 여전히 시장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데 있어 세계 최고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 믿음이 깨질 것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13년 미국에 거주하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이민자 수는 약 100만명으로, 전체 이민자(4130만명)의 2.5%를 차지했다. 25세 이상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이민자의 43%가 학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미국 전체 이민자 중 학사 이상 학위 소지자 비율 28%는 물론, 미국 전체 성인들 중 학사 이상 학위 소지자 비율 30%보다도 높은 것이다. 여기에 100만명가량의 페르시아인과 터키인 출신을 포함한다면 교육 성취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중동·북아프리카계, 미국 특허의 5.1% 출원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미국 혁신에 기여한 바를 추정하기 위해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제출된 특허 문서에서 약 2500개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이름을 교차 검색했다. 검색 결과 2009~2013년 WIPO에 출원된 미국 특허 중 5.1%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이민자의 것이었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이름만을 검색했기 때문에 성경 속 이름과 같이 다른 민족의 이름을 사용한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인물들은 빠져있다. 따라서 실제 수치는 더 높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과거 5년 동안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개인들이 매달 220건의 미국 특허 출원에 관여했음을 확인했다. 미국 내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발명가가 낸 특허 출원 건수는 유럽연합(EU) 내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가 낸 특허의 두 배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이민자가 낸 특허 수는 전 세계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출신들이 출원한 특허의 15%를 차지했다.

특허 출원과 관련해 미국 각 주에서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의 수가 가장 눈에 띄는 곳은 텍사스주와 매사추세츠주다. 예를 들어, 텍사스주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출신 발명가들이 낸 특허 출원 건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출신 발명가들이 낸 특허 출원 건수와 비슷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크게 우려되지 않는다. 미국과 앞서 언급한 이슬람 6개국 간의 연구·개발(R&D) 투자는 미미하다. 그러나 미국이 더 많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사람들에 대해 신원조회를 까다롭게 한다면 미국으로 건너오는 이민자 수는 줄어들 것이다. 미국 기술 혁신의 핵심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출신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감소는 금세 눈에 띈다.

비자 면제 국가의 국민들도 이름이 중동 사람처럼 들린다면 미국 여행 전에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한다. 이 같은 조치는 이집트 출신의 프랑스 역사가인 헨리 루소부터 나이지리아, 가나, 시에라리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무역 대표단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해외 방문객들을 불편하게 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 방문을 재고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항공권 요금 검색 애플리케이션 호퍼(Hopper)에 따르면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제안 이후 불과 몇 주 만에 미국행 온라인 항공편 검색 건수가 17% 감소했다.

전 세계에서 이민 제한으로 기술혁신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나라는 미국이다. 2000~2010년 미국에서 이민자가 제출한 특허 출원 건수는 19만4600건으로 2만5300건을 기록한 경쟁국 독일의 약 8배에 이른다. 미국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비율은 24~80%를 차지한다.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 중 30%는 해외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반이민 정책은 해외 인재들로 하여금 미국에 대한 매력을 잃게 할 수 있다. 미국 대학의 이공계 학과, 특히 공대는 유학생 비율이 높다. 반이민 정책의 영향으로 이들 유학생이 줄어들면 일부 학과는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


이슬람 국가 출신 미국 이민자들이 2월 3일 뉴욕 JFK 공항에서 집회를 열고 기도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이슬람 국가 출신 미국 이민자들이 2월 3일 뉴욕 JFK 공항에서 집회를 열고 기도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기업 해외 이전 가속화 우려도

제한된 이민 정책이 지속된다면 미국 기업들도 조직을 재정비해 미국 밖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미국 정부가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하고 국경을 통제한다면 미국 기업은 생산시설과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낯선 땅의 이방인’인 마흐무드 박사는 미국인에 대해 “시끄럽고, 무지하며, 편협하다”고 묘사했다. 오늘날 미국의 많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발명가들, 또 미국으로 이주하려는 이들은 소설 속 마흐무드 박사의 묘사에 공감할 것이다. 굳이 통역해주지 않아도 말이다.


▒ 사미 마로움(Sami Mahroum)
독일 헬무트 슈미트대 박사, 인시아드(INSEAD) 혁신·정책 이사, ‘블랙 스완 스타트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