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결정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저임금을 받으며 시간제로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 대표, 최저임금밖에 지급하지 못하는 영세사업자가 아닌 고용주 대표, 한시적으로 해당 업무에 선발된 정부 대표가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최저임금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계산의 편의를 위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7000원에서 8000원으로 오른다고 가정해 보자. 7000원에 8시간 노동자를 고용하던 식당이나 편의점 주인 등 영세사업자는 인상된 최저임금 8000원에 7시간씩만 고용할 수 있다. 사업자들은 기존의 고용 관계를 해소하고 새로운 고용 계약을 맺어야 한다.

기존에는 일당 5만6000원(7000원×8시간)을 고용주가 지급했지만, 앞으로는 4만9000원(7000원×7시간)만 주면 된다. 나머지 7000원은 정부가 보전해 준다. 고용주는 업무 시작 시간을 30분 늦추고, 끝나는 시간을 30분 앞당기는 대신, 줄어든 시간은 고용주 자신이 직접 메워야 한다. 그럼으로써 정부로부터 노동자 한 명당 7000원씩을 일당으로 받는다. 그러나 화장실 청소 등 각종 허드렛일은 고용주가 직접 하지 않고 피고용인에게 여전히 미룰 수 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수입은 변화가 없지만, 줄어든 노동시간 안에 노동의 강도는 강해진다.

위의 사례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어떻게 계층 간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지 보여준다. 또 그러한 분열과 갈등이 정책 목표와 상반되게 경제적 약자의 희생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최저임금 인상 자체를 정책목표로 삼기보다는 최저임금 수준 혹은 그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수를 줄이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당장 내년 이맘때 최저임금 상승폭을 두고 또 큰 논란이 일 것이다. ‘최저임금제’보다 한 단계 진화한 ‘최저이연임금제’를 고려해 보면 어떨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계층 갈등 유발

먼저 근속 개월 수에 따라 최저임금을 여러 단계로 나누자. 한 직장에서 어느 특정 단계의 임금을 받고 일을 하면, 일정 기간 경과 후 자동으로 다음 단계의 임금을 받도록 하자. 단, 고용주가 임금을 올려주고 싶지 않으면, 일정액의 ‘전별금’ 내지는 ‘퇴직금’을 주고 고용관계를 청산할 수 있도록 ‘바이아웃 옵션’을 허용하자.

위의 사례를 이용하면, 시급 7000원을 받던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을 일제히 8000원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몇 개월 이상 근속해서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진 노동자들의  임금을 8000원으로 올려주자는 얘기다. 물론 고용주는 원치 않으면, 전별금을 주고 노동계약을 중단하고, 시급 7000원에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 열심히 일하면 자동으로 ‘최저임금’ 수준에서 벗어나 단계적으로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현행 제도와는 다른 ‘전별금’의 존재 덕분에 어느 정도 고용도 안정된다. 고용주들 입장에서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제외하고 선택적으로 임금을 올려줄 수 있는 최저이연임금제가 더 낫다.

또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많은 영세사업자들의 경우, 지원자들의 낮은 근로의욕과 너무 빈번한 퇴직 또는 이직으로 인해 구인난에 시달린다. 최저이연임금제는 이 문제도 어느 정도 완화해 줄 수 있다. 전별금이나 단계별 인상폭, 근속 개월 수 등을 얼마로 할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다.

최저임금제는 7530원이라는 숫자 하나를 골라서 고용주와 노동자의 엇갈린 이해관계를 충족시켜야 하는 반면, 최저이연임금제는 더 많은 정책적 도구를 활용해 고용주와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조율한다. 물론 원활한 조율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많은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운영의 묘’ 역시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못할 일도 아니다.


▒ 심승규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미시간대 로스비즈니스스쿨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