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동안 아날로그 기술을 토대로 발전해오던 자동차 산업이 오늘날 디지털 환경의 충격으로 방향감을 상실하고 있다. 전기차·자율주행차와 같은 파괴적인 혁신이 자동차 회사들에 타격을 주면서 불확실성이 커졌다. 이러한 기술 변화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산업은 모든 선진국에서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서도 자동차 산업은 전체 제조업의 10%, 제조업 고용의 8%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에 처음으로 생산이 감소하더니 올해는 상반기 생산량이 7년 만에, 수출은 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외부 컨설팅 기관들도 한국 자동차 산업이 높은 인건비, 낮은 생산성, 신기술 부재 등으로 한계에 달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킨 나라와 그러지 못한 나라가 있는데 이 차이가 국가 경제력의 차이로 나타나기도 한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독일에서 7개의 일자리 중 1개가 자동차 산업과 연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자동차 산업은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14%를 차지하는 최대 산업이다. 한때 고전했지만 지금은 되살아난 자동차 산업 덕분에 미국과 영국도 고용과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반면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자동차 생산량이 2001~2015년에 각각 44%, 36% 감소했다. 한국 통계를 근거로 하면 자동차 생산 10만 대당 노동자 수가 8000명 정도인데, 생산이 100만 대 이상 감소한 두 나라에서는 8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나라의 자동차 ‘산업 경쟁력’과 그 나라 자동차 ‘기업 역량’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의 국내 생산 대수는 2015년 201만 대에 불과했지만 프랑스 자동차 회사들이 전 세계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600만 대였다. 즉 생산의 3분의 2를 자국 밖에서 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국가 산업 경쟁력은 상실했지만 자동차 기업 역량은 여전히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어떤가. 현대차는 작년에 국내에서 323만 대를 제조했지만 글로벌 기준으로는 825만 대를 생산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현대차의 양적 성장은 주로 해외 공장에서 일어났다.


생산 늘리기 위해선 적대적 노사관계 개선해야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작년에 국내 생산이 7% 줄었는데 올해도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하향 트렌드를 역전시키지 못하면 한국도 프랑스처럼 해외 생산 위주의 자동차 생산국이 될 것이다. 한국 내 일자리가 없어지면 피해자는 한국 근로자와 정부가 될 것이다.

우선 국내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적대적 노사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공장별·라인별 전환배치가 어렵다는 점과 상승하는 노동비용은 한국을 제조업 하기 나쁜 환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환경은 우리 자동차·부품 회사들이 현 생산 수준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상황이다. 정부 역시 일자리 창출에 역행하는 노동 정책 기조를 재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동차 회사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디지털 혁명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불확실한 환경에서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협업이다. 제조사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과거의 공급망 관리 방식으로는 디지털 환경에서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수익의 일부를 포기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리스크도 네트워크 내 회사가 분담하게 하는 방식이 더 현명하다. 자동차 회사의 디지털 역량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협업이 더욱 절실하다. 미안한 지적이지만 현대차의 내비게이션보다 통신사의 내비게이션이 모든 면에서 월등히 우수하다. 완성차 업체가 내비게이션 기능을 협업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개발한 결과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맞이할 미래는 세 가지다. 독일처럼 국가 산업 경쟁력과 기업 역량 둘 다 갖출 수도 있고, 프랑스처럼 회사는 잘되지만 국내 생산과 고용은 감소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국가 경쟁력과 기업 역량 모두를 상실할 수도 있다. 지금부터 5년이 골든타임이다. 경영진·노조·정부 모두 새로운 마인드를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