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이영지>
<일러스트 : 이영지>

서울 특파원을 지낸 일본 언론인 타마키 타다시는 일본 집값 폭락의 경험담을 자신의 책 ‘한국 경제,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에 자세히 썼다. 1991년 초 그는 5400만엔(약 5억4000만원)을 주고 도쿄 외곽에 있는 아파트를 샀다. 당시 일본 경제의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던 때여서 아파트 가격도 슬금슬금 하락할 조짐을 보였다. 집값이 계속 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해 여러 경제 전문가나 선배 경제기자들에게 물어봤더니 한결같이 “전통적으로 일본 경제성장률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높았으므로 갈피를 못 잡겠으면 무조건 사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대출받아 집을 사놓고 미국 특파원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5400만엔에 샀던 아파트가 4년 만에 정확히 반 토막 나 2800만엔이 돼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3년 뒤, 아파트를 팔려고 내놨는데 집값은 2100만엔으로 더 떨어져 있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진 일본에서 흔하게 경험했던 일이다.

일본의 ‘버블 붕괴’ 경험 그리고 한국의 인구 구조 변화 및 저성장 추세와 맞물려 우리나라에도 ‘집값 대세 하락’이 곧 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 통계청 인구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는 작년을 정점으로 올해부터 감소세에 들어선다. 2020년부터는 그 속도가 더 빨라져 매년 30만 명 이상씩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가능인구는 경제 활동이 가능한 만 15세부터 64세까지 연령대를 말한다. 주된 주택 수요층이 30~50대인 걸 감안하면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주택 수요층이 줄어들어 집값이 강세를 보이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예측이 무색할 만큼 집값이 고공 행진을 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있고 중·노년층까지 월세 수입 등을 기대하면서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정부가 서울 전체를 투기과열지구로 묶고 서울 강남 등은 투기지구로 더 묶는 고강도의 ‘8·2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부자들 자산 중 부동산 가장 많아

우리나라에서 집값은 일본과는 달리 계속 강세를 보일 수 있을까. 그건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얼마 전 KB 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낸 ‘2017 한국 부자 보고서’를 보면 집값 전망과는 무관하게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불패론’은 여전한 걸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부자들 가운데 400명을 설문조사했더니 자산을 불려온 것이 대체로 부동산을 통해서였다. 부자들이 보유한 자산 중에 부동산 비중(52.2%)이 제일 높았고 그 다음이 금융자산(44.2%), 기타 자산(3.6%)순이었다. 수익률 높은 투자처로 꼽은 것도 국내 부동산(32.2%), 국내 주식(23.4%), 해외 주식(9.7%)이었다.

일반인들뿐 아니라 부자들도 여전히 아파트 사랑이 대단했다. 부동산 투자에서도 아파트(중복 응답 49%)와 땅(48.7%), 빌딩·상가(42.6%)순으로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앞으로 유망한 부동산 투자로 재건축 아파트(27.7%), 빌딩·상가(26.2%), 토지·임야(16.2%), 일반 아파트(9.2%)를 꼽았다. 작년만 해도 빌딩·상가(33.0%)가 유망 부동산 투자 1순위였는데 올해는 재건축 아파트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최근 강남 재건축 아파트 집값이 무섭게 오른 데는 이런 변함 없는 ‘부동산 사랑’이 한몫했다고 보인다. 이들의 ‘부동산 불패론’은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몰라 앞으로 경기 침체가 지속돼도 부동산을 처분하겠다는 부자는 전체의 20.2%밖에 안 됐다.

여기에 전세가와 매매가 차이가 급격히 좁아진 틈을 겨냥해 젊은층까지 갭투자에 나설 만큼 갑자기 부동산 투자에 불이 붙는 바람에 새 정부가 출범 석 달 만에 벌써 두 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집값 잡기에 나섰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고강도 부동산 규제책에 부동산 시장은 상당 기간 숨죽이며 정부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다. 하지만 시장과 맞서 싸워 이긴 적이 한 번도 없는 정부가 이번에는 그 전쟁을 진짜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