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간 경제 성장률을 3%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지만 성장률은 2%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사진 :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간 경제 성장률을 3%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지만 성장률은 2%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사진 :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이제 트럼프 행정부가 이끄는 미국 경제와 정책을 보다 확실히 평가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만큼 현재 미국 경제에는 모순이 많다.

일단 금융 시장과 현실 경제 사이의 괴리가 크다. 미국의 주식 시장은 계속해서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미국 경제는 지난 상반기 고작 2% 성장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보다 더 낮은 성장률이다. 올해 안에 상황이 개선될 여지도 없어 보인다.

주식 투자자들은 트럼프의 정책들이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기업 이익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기대한다. 게다가 둔화된 임금 상승률을 보면, 미국 인플레이션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목표치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연준은 기대보다 천천히 이자율을 정상화해야 한다.

장기 이자율 하락과 달러화 약세는 미국 주식 시장에 호재다. 트럼프 ‘리플레이션 트레이드(reflation trade·물가 상승에 대비해 채권을 팔고 주식을 사는 것)’ 때문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기업 친화적인 정책은 여전히 개별 주식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한 대규모 재정 정책으로 달러화의 가치가 오르고, 연준이 이자율을 높일 것이란 걱정도 줄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무능함에 비춰봤을 때 정책적 자극이 있더라도, 아주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 정책을 추진하는 행정부가 무능하다는 사실은 변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려던 공화당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중도 공화당원들이 2000만 미국인의 건강보험을 박탈하는 법안에 투표하기를 거부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세제 개혁 쉽지 않아

트럼프 행정부는 이제 세금 개혁에 착수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초기 세금 개혁안은 오바마케어 폐지와 ‘국경조정세(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장려하기 위한 법인세)’ 도입에 따른 예산 절약에 기초해 계획됐다. 하지만 국경조정세는 백지화됐다.

이로 인해 공화당이 손쓸 수 있는 여지가 줄었다. 미국 상원의 예산 조정 규칙에 따르면 감세로 특정개인 혹은 기업의 납세액이 변하는 일이 있어도, 정부의 세입 총액은 변해서는 안 된다. 결국 공화당은 계획보다 적게 세율을 낮추거나, 일시적이고 제한적으로 감세해야 한다.

더 많은 미국인이 복지를 누리고,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부유층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노동자와 중산층에 돌아가게끔 세제 개혁을 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제안은 정반대다. 트럼프의 논리대로라면, 80~90%의 이익이 상위 10%에 돌아간다.

아울러, 미국 기업이 수조달러를 비축하고, 자본 투자에 소극적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주장하듯 세율이 높아서가 아니다. 낮은 임금 상승률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고, 경제 성장이 둔화했기 때문이다. 

세제 개혁 외에 인프라에 10조달러를 투자해 단기 성장을 노리는 트럼프의 계획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예산을 직접 투입하기보다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추진될 수 있도록 민간부문에 세금을 감면해주는 방식을 선호한다. 불행히도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세금우대조치보다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된다. 또 첫 삽을 뜰 준비가 된 프로젝트들이 흔치 않다.

무역부문에서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은 트럼프 행정부가 환율조작국 지정, 전면적 관세 부과, 국경조정세 도입 등의 보호주의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쁜 소식은 트럼프가 ‘미국산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그의 보호주의적 성향이 일자리를 창출하기보다 경제 성장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이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고 유럽연합(EU)과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협상을 결렬시켰다. 그는 북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 중이고 대한민국과의 쌍방협정과 같은 다른 FTA도 재협상을 고려 중이다. 특히 중국이 북핵 위협 대응에 협조적이지 않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그는 철강 등 수입품에 관세를 매김으로써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이민 제한은 미국 노동력 약화시켜

아울러, 트럼프는 이민을 제한함으로써 미국의 잠재 성장률을 낮출 수 있다. 미 행정부는 무슬림이 압도적으로 많은 6개 국가의 방문객들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고숙련 노동자의 이주를 막고 불법체류자 추방을 확대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소란스러웠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계획과 더불어 이 조치들은 특히나 미국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노동력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 노동력 공급을 차단하고 경제 성장을 위축시킨다.

마지막으로 트럼프의 탈규제 정책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될 수 있다. 규제가 너무 느슨해지면 자산 및 신용 거품에 이은 금융 위기와 대침체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

반면 환경 규제를 완화하고자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겠다는 트럼프의 결정은 생태계의 퇴보와 태양열 에너지 같은 친환경 산업의 성장 둔화를 초래한다. 노동 안전망 약화는 노동자의 협상력을 낮추고 이로 인해 임금 상승률과 총소비가 침체될 수 있다.

실질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이 2%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플레이션율이 낮고, 기업 이익과 주식시장이 호황인 것은 맞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와 메인 스트리트(미국 금융의 상징인 월스트리트와 대비되는 실물경제를 의미) 사이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유동성과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1996년 미 주가 폭등 당시 미 연준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사용한 단어)로 인한 높은 시장 가치는 근본적인 현실 경제를 반영하지 않는다. 궁극적인 시장 조정은 피할 수 없다.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 트럼프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국제통화기금 자문위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코노미스트, 백악관경제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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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조정세(border adjustment tax) 2016년 6월 미국 공화당이 제안한 세제 개편안.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장려하기 위해 미국 기업이 수입 부품을 사용하면 비용을 인정하지 않고, 수출할 경우 수출액을 과세표준에서 제외하는 것이 골자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는 미국산 부품을 사용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