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이지애>
<일러스트 : 이지애>

얼마 전 일본의 사회 운동가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후지타 다카노리가 한국을 찾았다. 2015년 ‘하류노인: 1억 인구 노후 붕괴의 충격’이라는 책을 내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인물이다. 이 책이 국내에는 ‘2020 하류노인이 온다’는 제목으로 번역돼 있다. 국내 언론들이 앞다퉈 그의 방한 소식을 전했다. 그만큼 이웃나라 일만이 아니고 바로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는 공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2005년 미우라 아츠시의 ‘하류사회: 새로운 계층 집단의 출현’이 나온 이후 하류인생, 하류청춘, 하류지향 등 하류(下流) 시리즈가 붐을 이뤘다. ‘하류지향’은 학업도, 직업도 거부하는 일본의 신인류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하류인생으로 내몰린다는 의미보다는 성취를 중시하는 부모 세대와 달리 자기 선택과 나름의 가치 판단으로 힘든 일을 회피한다는 자발적 의미가 강하다.


평균적인 샐러리맨도 하류로 전락

반면 ‘하류노인’은 이보다 훨씬 비극적이다. 중산층으로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쳤어도 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하류인생으로 내몰린다는 의미가 강하다. 저자가 정의하는 하류노인은 생활보호기준(우리나라의 기초생활수급자) 정도의 소득으로 생활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노인층이다. 일본 인구 중 대략 600만~700만명을 하류노인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하류노인’이라는 단어의 어감 자체가 너무 강해 충격이 더한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표현으로 ‘상류층’이란 말은 써도 ‘하류층’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하류’라는 말은 가난하고 돈 없다는 의미보다 품격이 저급하고 저속할 때 더 자주 쓴다. 부자라고 다 고품격의 상류층인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반드시 저속하지 않다. 가난해도 당당하고 존경할 만한 인품을 갖춘 사람이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빈곤층’ ‘저소득층’이란 표현은 써도 가난한 사람을 ‘하류층’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아마 이 책이 영어로 쓰였다면 한국식 어휘로 순화돼 번역됐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에서 ‘하류노인’이라고 책이 나왔으니 굳이 표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소개돼 충격의 정도가 훨씬 강하게 와닿는 듯하다.

부자 나라 일본 노인들 상황을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일본은 세대 간 부의 격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젊은이들은 별로 돈이 없지만 경제 성장 시대에 부를 축적한 고령층은 부유한 세대다. 1700조엔(약 1경7000조원)이나 되는 가계 금융자산의 60% 정도가 일본 노인들의 자산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 연금도 매달 평균 24만엔(240만원)이나 받는다. 일본 물가 수준에서 3만~4만엔(30만~40만원) 정도가 부족한 게 노후 생활의 고민이라고 한다.

이렇게 여유로운 나라에서조차 ‘하류노인’에 대한 경보를 울리고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저자는 돈 버는 시절의 연평균 소득이 400만엔(4000만원) 전후여도 노년에 하류화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평균적인 샐러리맨으로 평균의 삶을 누리던 사람도 노후에 보통으로 살지 못하고 하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후에 ‘수입·저축·사람’이 없으면 누구든 하류노인이 될 수 있다면서 대표적 유형을 꼽았다. 큰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 모아둔 돈을 치료비로 다 써버린 경우, 자녀가 변변한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워킹푸어나 은둔형 외톨이로 사는 경우, 병 걸린 자식을 돌보느라 생활이 어려워진 노인, 황혼 이혼을 한 경우,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다 나이 드는 바람에 치매에 걸렸어도 의지할 가족 하나 없는 독거노인 등이다. 하류노인이란 단어는 쇼킹하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유형은 우리가 그간 접해온 노인 빈곤, 노인 파산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이렇게 충격적 어휘를 동원해서라도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 제도적 대책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중대 사안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