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든 상황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그의 말은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미국은 민주주의가 성숙하기 전에나 존재하던 ‘통제 불능’의 지도자를 맞았다. 전 세계는 그의 주장을 어느 선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대표적 예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논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폐기를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까지 그랬다. 하지만 본인이 지명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마저 한·미 FTA 폐기에 반대한다. 미국 의회에서 한국의 협정 이행 방식에 불만의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면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미 FTA 전면 폐기는 미국에 이익이 아닌 손실을 안겨 준다. 그의 주장은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70년 동안 견고했던 한·미 동맹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의 위협은 곧 미국 경제와 안보를 위협한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측면에서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문제는 미국 대통령에게 세계 무역을 좌지우지할 권한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은 의회 동의 없이 무역협정에 제동을 걸거나 무역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갖고 있다. 전쟁이나 예산, 세제와 관련해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과는 다르다. 지지율 추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비이성적으로 무역 관련 재량권을 이용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FTA 폐기 주장은 한·미 동맹 위협요인

트럼프 대통령의 불확실성은 미국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구성원이 대거 교체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은 조기 사임 의사를 밝혔다. 문제는 내년 2월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임기 만료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던 옐런 의장을 재신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그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

백악관의 눈치를 보는 연준이 탄생한다면 미국의 금리 인상(현재 기준금리는 연 1.00~1.25%)은 예상보다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연준은 트럼프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을 돕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미 금리 인상은 당초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될 전망이다. 낮은 물가상승률 때문이다. 최근 실업률은 4.3%까지 떨어질 정도로 고용 여건은 개선되고 있지만 물가는 여전히 저공 비행 중이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7월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4% 오르는 데 그쳐 연준의 물가상승률 목표치(2.0%)를 밑돌았다. 경기 부양책인 내년도 예산안 통과가 지연되는 점도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장벽’ 예산안을 놓고 의회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연준은 이달 말 보유자산 축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상됐던 12월 금리 인상은 불확실해졌다. 내년에도 금리 인상은 1~2번에 그칠 전망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올해 3차례, 내년에는 그 이상의 금리 인상을 전망했다.

연준이 금리 인상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난 것은 좋은 소식이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이 완화됐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측 인사들이 연준을 장악한다면 그에 따른 비용을 치를 것이다. 제로(0) 금리를 고집하다가 경기 후퇴 충격이 나타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자칫하면 미국 중앙은행이 정치권에 휘둘리는 1970년대 닉슨 행정부 시절이 재현될지도 모른다. 이런 대외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한국의 경제 전망은 밝다. 정부가 적극 개입한다면 3%대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부동산 거품이 없었고 소비자 신용도 크게 늘지 않았다. 또 한국 정부는 통일 비용 등을 고려해 재정 여력을 많이 비축하고 있다. 저축을 줄이고 신용을 증대한다면 충분히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다만 한국은 무역 의존도를 낮추고 내수 활성화에 힘써야 한다. 현재 한국은 대미·대중 등 핵심 무역 부분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축소되는 추세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높은 수준이다. 2015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입액 비율은 84.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18번째로 높다.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韓, 일본처럼 내수 활성화 적극 나서야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일본 경제는 내수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디플레이션과 소비 침체, 부채 문제 등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일본 정부는 최근 임금 인상에 힘을 쏟고 있다. 일본이 5년 전부터 물가상승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은 괜찮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 한국에는 공공투자할 영역이 많다. 한국의 사회복지 분야 지출은 GDP의 10% 수준으로 OECD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이 꼭 풀어야 할 문제는 고령화다. 한국 정부에 4가지 정책을 제안한다. 우선 여성의 노동 참여를 늘려야 한다. 일하는 여성을 늘리는 데 머무르지 말고 여성이 성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새로운 산업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성공 신화를 이끈 조선과 반도체는 미래를 견인할 수 없다.

전통적 산업에서 새로운 산업으로 노동과 자본을 순조롭게 이동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선진국들의 성장률이 높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또 내수를 키워 수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고령화 부작용(노동 부족)에 대비해 이민 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 아담 포센(Adam Posen)
하버드대 박사,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영란은행 통화정책위원, 뉴욕연방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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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 미국 소비자들이 물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평균 가격 인상 수준을 보여준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물가 지표로 활용한다. 만약 물가지수가 연준의 목표치를 상회하면 연준은 인플레이션 위험을 낮추기 위해 추가 금리 인상을 검토한다. 반대로 목표치를 하회하면 금리 인상 지연이나 금리 인하로 대응한다. 미국 상무부 산하 경제분석국이 매달 말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