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국가에서 실업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학자들이 갖는 질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경제학자들은 근본적인 모순을 발견한다.

필자는 1960년대의 급진적인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1950년대 학계에서 가르친 주류 거시경제학을 부정해왔다. 존 힉스, 윌리엄 필립스, 제임스 토빈 등 유수의 경제학자들이 정립한 케인스주의 이론에 따르면 총수요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예컨대 실업률이 높은 이유는 오로지 총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낮은 실업률은 총수요가 커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나의 심기를 건드린다. 경제 이론의 기초에 따르면 구조적인 힘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빠른 기술적 진보와 더 일하고 싶은 환경, 저축에 대한 선호 등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는 노동력과 자본의 증가를 통해 총공급을 늘리고, 이에 따라 고용과 투자도 증가한다.

하지만 케인스주의 학자들은 이러한 구조적 힘이 해롭다고 주장한다. 총공급이 커지면 시장에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가 공급되지만, 총수요가 그대로일 경우, 소비가 늘어나지 않아 재고가 쌓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 즉, 정부가 총수요를 늘리는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실업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업률, 물가상승률, 생산량 증가 등 전통적인 거시경제학적 변수로 측정된 경제 지표는 단지 총수요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총수요’만 중시하는 케인스주의의 오류

구조적 힘은 생각보다 더 크다. 오로지 ‘수요’만이 고용, 투자, 성장을 모두 변화시킬 만큼 가장 강력한 변수라는 케인스주의자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번 똑같은 주장을 반복한다. 

거시경제학에서 구조주의적 관점은 ‘자연실업률(완전고용이 이뤄졌을 때 실업률로 정부의 안정화 정책과는 상관없이 일정 비율을 유지함)’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 개념은 양차 대전 사이에 만들어진 ‘자연 이자율’ 개념에서 차용한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이라는 단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자연실업률은 빛의 속도처럼 자연에서 결정되는 고정적 수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조주의적 거시경제학에 따르면 경기가 부흥기와 침체기를 오가는 동안에도 실업률은 정상으로 돌아가려는 회귀 본능이 있다. 실업률이 자연실업률 수준보다 낮아지면 물가는 상승한다. 하지만 실업률은 다시 자연실업률 수준으로 복귀한다. 실업률을 낮춰도 경기가 부양되는 것이 아니라 물가만 상승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관점에도 문제는 있다. 현재 미국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은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에서 실업률은 최근 매우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다시 과거의 자연실업률 수준으로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몇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유동성을 넘치게 공급했지만,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지 않다. 유로존에서도 실업률이 하락하는데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낮다.

낮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이 낮은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까. 여태까지 골수 케인즈주의자를 비롯해 구조주의자 경제학자들 역시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다. 중요한 사실은 자연실업률이 고정된 수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연실업률은 구조적 변화에 의해 상승하거나 하락할 수 있다.

자연실업률은 기술적 혹은 인구학적 요소와 같은 구조적 힘에 의해서 움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구 변화가 임금 상승 속도를 낮추고 자연실업률을 낮출 수 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학계에서는 인구 구조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지만, 인구 변화가 거시경제학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케인스 경제학을 창시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 <사진 : 조선일보 DB>
케인스 경제학을 창시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 <사진 : 조선일보 DB>

인구 변화와 노동자 가치관이 실업률 낮춰

예를 들어, 현재 베이비부머 세대는 상대적으로 고임금 직업에서 은퇴하는 반면, 저임금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은 노동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의 실업률에서 임금 상승률을 낮춘다. 낮은 실업률에도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 이유다. 즉, 실업률이 낮아서 경제가 좋아보이는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노동자의 가치관과 태도가 실업률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지만 설득력 있는 가설이 하나 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불황 이후 노동자들이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을 찾기 꺼리는 경향이 커졌다는 주장이 있다.

최근 노동 시장에서 일자리 수가 구직자 수보다 많아졌기 때문에 이직이 쉬워진 반면, 노동자들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도전적인 고연봉 일자리를 더 이상 원치 않는다. 결과적으로 산업 전반적인 생산성이 저하됐다. 수요는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고용주들이 임금 인상을 주저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울러 필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초기 미국의 달러화 강세 때문에 미국 기업이 무역에서 경쟁력을 잃으면서 같은 가격에 더 많은 생산을 꺼리게 됐다. 대신 더 낮은 가격에 비슷한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직원의 임금을 올릴 수 없었다. 즉 ‘수퍼 고용(super-employment·낮은 실업률과 낮은 물가상승률)’을 야기했다.

이 모든 사실이 자연실업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자연적으로 고정된 것이 없다는 얘기다.


▒ 에드먼드 펠프스(Edmund S. Phelps)
200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앰허스트대 경제학 학사,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미국 연준·재무부 경제자문, EBRD 경제자문, 예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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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주의(케인스 경제학) 케인스 경제학은 20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사상에 기초한 경제학 이론이다. 케인스 경제학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혼합경제를 장려한다. 이는 시장과 민간 부문이 국가의 간섭 없는 상태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고 주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실제로 케인스 경제학은 여러 경제학자들이 방임주의의 실패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됐다.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 정부의 안정화 정책과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변하지 않는 구조적 실업률을 말하며, 필립스곡선에서 물가상승률이 ‘제로(0)’일 때의 실업률이기도 하다. 즉 완전고용 상태에서의 실업률 또는 물가상승 속도를 가속화하지 않고 현재 수준에서 안정시킬 수 있는 실업률이다. 이는 1968년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인플레이션 정책을 실시해도 낮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