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이지애>
<일러스트 : 이지애>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해질녘 다가오는 짐승이 ‘내가 사랑하는 개’인지 아니면 ‘나를 물려는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간대를 말한다. 2007년 방영돼 인기를 끈 드라마 제목으로 사용되면서 많이 알려졌다.

개와 늑대는 얼핏 보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다. 개의 해인 무술(戊戌)년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 토종 견종인 풍산개, 진돗개, 경주개 동경이가 다른 외국 견종들보다 늑대나 코요테의 유전자형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야성(野性)이 강하다는 뜻이다. 농촌진흥청에서 33품종 2258마리의 유전체를 분석해서 내놓은 결과다. 이 중에서 토종견은 진돗개(백구·흑구·네눈박이·호구), 풍산개(백구), 경주개 동경이(백구) 등 3품종 189마리를 분석했다. 고대 품종으로는 차우차우·샤페이·아프간하운드·시베리안허스키 등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현대 품종으로는 복서·보더콜리·치와와·그레이트데인 등이 포함됐다. 이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표 토종개인 진돗개, 풍산개, 경주개 동경이는 야생 늑대를 공통 조상으로 뒀지만 각각 독특한 유전적 다양성을 가지며 한반도에 정착했다.

풍산개, 진돗개만큼이나 한국인도 야성(野性)이 강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 민족의 핏속에 기마민족의 DNA, 대초원을 호령하던 기백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책 반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이런 주장을 책자로 만들어 강연을 다닐 정도다. 사진과 도표 등을 직접 만든 ‘대한민국 경제와 한민족의 DNA’라는 책자는 70쪽이 넘는다. 지난 50년간 급성장을 이룬 한국 경제의 저력을 고대 기마민족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세계 GDP가 7배 성장할 때 36배나 성장한 우리 경제의 기적은 이런 저력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고조선이 기원전 20세기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중국 대륙을 지배한 동아시아의 강대국이었다고 했다. 이런 대제국을 만들었던 DNA가 잠자고 있다가 건국 이후 다시 깨어났다. 김 전 위원장은 이런 주장을 펴기 위해 몽골과 실크로드 등을 여러 차례 여행했다. 그는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 성장 원동력은 유라시아를 호령했던 기마유목민의 DNA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앞으로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등을 뛰어넘는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기마민족은 안주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한국의 기업들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기마군단의 강점인 속도가 한국 기업의 특성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속도감 있게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 기마군단의 흙먼지가 세계 경제를 주름잡게 했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의 주장에 한마디 보태고 싶다. 이런 기마군단에 더 채찍질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변화보다 한발 더 빨리 움직이는 리더십, 기마군단 사령부 역할을 해줄 정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다하겠다고 나서선 안 돼

우리 정부가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 ‘소득 주도 성장’ ‘사람 중심 경제’라는 새로운 국정 철학과 리더십이 도가 지나쳐 기마군단을 주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회적 안전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정부가 모든 것을 해주겠다고 세금 더 걷어 ‘큰 정부’가 되겠다고 나서서는 곤란하다. 복지 과속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대기업을 혼내준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장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이력을 가진 장관, 낙하산이라는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운 대형 공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도 걱정스럽다. 분배의 중요성만큼 성장의 과실을 더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우리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