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이들이 영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이들이 영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 한 마음을 바꿀까? 사회적인 통념에 비춰보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멈추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인 통념이 무너져 내리는 혁명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이 어떠했는지 생각해보라. 멀리 갈 것도 없이 애초에 브렉시트를 위한 국민투표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나. 혁명적인 시대에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건들이 때때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브렉시트가 바로 그런 사건 중 하나였고, 반대로 브렉시트를 멈추는 것 역시 그런 사건이 될 수 있다.


브렉시트가 불가피하다는 생각 버려야

브렉시트를 주장해 온 나이젤 패라지(Nigel Farage) 영국독립당(UKIP) 대표에게 물어보라. 그는 최근에 “EU에 잔류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모든 국정 운영을 맡고 있다”며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경고했다. 그는 “EU 잔류파가 의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브렉시트를 쟁취하려면 탈퇴파가 다시 한 번 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독려했다.

브렉시트에 찬성한 영국의 국민투표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같은 일들이 일어난 것은 불평등과 글로벌화 등과 같이 우리 경제·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런 문제들이 브렉시트를 피할 수 없게 만들었고,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런 설명이 옳다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여러 차례에 걸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인 격변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일어난 많은 일 가운데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처럼 브렉시트도 아주 작은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만약 영국인의 1.8%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쯤 브렉시트는 오래된 우스갯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받은 표 가운데 300만표가 지역별로 조금만 다르게 분배됐더라면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말도 터무니없는 농담에 그쳤을 것이다.

브렉시트를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지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할 뿐이다. ‘지나고 보니 틀렸다’는 식의 반응보다 확실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반대 의견을 더 분명하게 내야 한다. 정부 정책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반대하는 건 반역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특징일 뿐이다. 브렉시트가 불가피하다는 생각 자체를 없애야 한다.

이런 일은 상호의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정치인들은 여론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낄 때에만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여론은 믿을 수 있는 정치적인 리더십이 존재할 때에만 바뀔 수 있다. 결국 둘다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야당에 반민주주의적이라는 낙인이 찍힌다면 정치인들은 주눅이 들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유권자들이 고민할 여지도 없어진다. 여론조사 결과나 포커스그룹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것처럼, 불가피하다는 인식 그 자체가 브렉시트의 결과를 바꾸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30% 정도의 유권자들은 경제적인 비용과 무관하게 언제나 EU 탈퇴를 열정적으로 지지했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 트럼프의 언행과 무관하게 늘 지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브렉시트 탈퇴파가 과반을 넘길 수 있었던 건 EU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는 않지만, 국민투표를 정부에 대한 항의의 수단으로 생각한 20% 정도의 유권자들 덕분이었다. 이들 유권자는 브렉시트나 EU 문제에 대해서 특별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브렉시트가 자신들의 진짜 관심사인 보건복지, 불평등, 저임금,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실망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하루빨리 브렉시트를 마무리하고 영국이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노동당이 브렉시트 반대 여론 이끌어야

노동당은 그들이 다시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브렉시트에 반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지난해 영국 총선 결과를 분석해보면 노동당이 거둔 예상치 못했던 승리는 거의 대부분 브렉시트를 멈추려는, 부유하거나 젊은 유권자들 덕분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이런 유권자가 아니었다면 보수당의 테레사 메이 총리는 예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을 것이다.

노동당을 이끄는 제러미 코빈이 브렉시트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인상적인 표현대로 ‘브렉시트의 시녀’가 된다면 새로운 노동당의 지지층은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당은 마르크스주의자와 중도주의자로 분열되고 총선에서의 승리는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노동당이 브렉시트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면 여론은 급격하게 변화할 수 있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건 민주주의 정치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실수를 하게 될 것이고, 노동당은 이 과정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브렉시트가 불가피하다는 생각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이 펼쳐진다면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보수당 의원들도 용기를 낼 수 있다. 노동당이 만들어낸 브렉시트 반대표가 실제로 브렉시트를 멈출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말이다. 이렇게 되면 당에 대한 충성심보다 국가적인 이익을 우선시하는 보수당 의원들이 노동당의 노력을 칭찬하면 칭찬했지,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고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보수당 의원들은 영국과 유럽의 재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면 자신들의 경력도 그만큼 번창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를 위한 첫 번째 싸움에서 졌다. 노동당은 영국 정부가 EU와 어떤 협상을 하든 의회의 승인을 거칠 것을 요구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12명의 보수당 의원과 연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돌파구는 보다 유연한 브렉시트 외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브렉시트 자체를 멈출 수 있는 진지한 캠페인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캠페인이 성공하려면 브렉시트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 대한 항의의 차원에서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유권자들에게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든 브렉시트가 그 답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보여줘야 한다. 노동당의 정치인들은 브렉시트에 협력하는 건 자살골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설득해야 하고, EU에 마음이 기울어 있는 보수당의 몇몇 의원들에게는 그들의 브렉시트 반대 활동이 헛된 일이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브렉시트에 대한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걸 분명하게 전할 필요가 있다.

현재 브렉시트 협상을 이끌고 있는 보수당의 데이비드 데이비스(David Davis) 브렉시트 담당 장관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생각을 바꿀 수 없다면, 그건 민주주의 사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영국은 여전히 민주주의 국가다. 그리고 영국은 브렉시트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다.


▒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
케임브리지 대학교 수학과, 하버드대 경제학 석사, ‘자본주의 4.0’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