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사진 : 블룸버그>
미국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사진 : 블룸버그>

연초에만 해도 많은 투자자가 낙관적인 증시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전망은 금리 급등으로 인한 경기 후퇴에 대한 공포 때문에 최근 들어 흔들릴 기미가 보이고 있다. 물론 최근 급락했던 주식 가격이 단기간에 강하게 반등한다고 해도 다들 놀라지 않고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다. 최근의 주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많은 투자자가 여전히 낙관적인 증시 전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건 이런 분위기가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와는 딴판이라는 점이다.

사실 시장 참여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낙관적인 태도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다. 2017년에 나타난 견실한 경제 성장 이후 다양한 거시경제 지표가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업률, 인플레이션, 소비자 심리지수, 기업 심리지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뿐 아니라 국내총생산(GDP) 전망 역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견조한 성장세가 이어질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낙관적인 경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에 보기 힘들었던 현상이다. 거시경제 지표가 긍정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고, 인플레이션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 우려에도 세계 경제는 순항

게다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 성장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IMF는 지난달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수정 보고서(World Economic Outlook Update)’에서 “2017년의 강한 성장세가 2019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라며 “2018년과 2019년 세계 경제 성장 전망을 모두 기존 전망 대비 0.2%포인트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경기 사이클상 지금은 세계 경제가 둔화될 조짐이 보여야 할 시점인데도 말이다.

더불어 주식시장은 더 이상 통화정책에 기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록적인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주식시장의 강세는 자본 투자가 주목할 만큼 증가한 데서 비롯됐다. 지난해 4분기 미국의 국내 총 민간 투자액은 전년동기 대비 5.1% 증가했다. 경기 침체가 한창이던 2009년 3분기와 비교하면 무려 90%나 늘어난 것이다.

기업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핵심 경제 지표인 미국 내구재 수주도 살아나고 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내구재 수주는 전월 대비 2.9%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지난해 11월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구재 수주가 살아나는 건 기업 경기의 회복세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다른 거시경제 지표들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지난해 산업 생산·설비 가동률 지수가 3.6% 증가해 2010년 이후 가장 크게 늘었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거듭해서 인프라와 공공 프로그램에 1조5000억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런 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이런 모든 종류의 긍정적인 흐름은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의 경고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지난 몇 주 동안만 해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현재의 국제 질서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경고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세계화가 중대한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지적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전 세계적으로 불안감이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했다.


포퓰리즘 지수 1930년 이래 최고치

최근 주가 급락이 정치인들의 경고를 반영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나는 정치인들의 경고가 결과적으로 옳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정학적인 위험은 여전히 상당한 수준으로 존재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의 포퓰리즘은 굉장히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가 발표하는 세계 포퓰리즘 지수는 1930년 이래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포퓰리즘이 정치적인 위협으로 계속 남아 있는 한, 자유무역주의에 반하는 보호무역 정책과 자본 통제의 위험성도 계속해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위협은 결국 경제 성장을 저해할 것이다.

시장은 여러 구조적인 난제가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계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 부채와 불투명한 재정 전망 등 구조적인 난제가 지속 불가능한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장기적으로 경제를 침체시킬 수밖에 없는 정책들을 활용해 단기적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고 있다. 이런 정책은 부채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미국의 부채 규모가 앞으로 30년간 3배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2017년에는 GDP의 2.9%를 차지하던 부채 규모가 2047년에는 9.8%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 의회예산국은 “급증하는 부채 전망은 앞으로 정책 입안자들에게 커다란 난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계의 리더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서로 다른 시계를 본다. 경제계의 리더들은 주식시장의 단기적인 이익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길어야 1년 정도를 보면서 계획을 짜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그보다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정책을 짠다.

올해 내내 경제계의 리더들과 시장 참여자들은 경기 회복의 데드라인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근 주가 급락은 피할 수 없는 시한이 멀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신호일 수도 있다.


▒ 담비사 모요(Dambisa Moyo)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MPA),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죽은 원조’ ‘미국이 파산하는 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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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는 레이 달리오가 1975년 설립한 글로벌 헤지펀드다. 운용 자금만 1600억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로 역대 헤지펀드 가운데 누적 수익률이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3월 발표한 ‘포퓰리즘 보고서(Populism: The Phenomenon)’에서 포퓰리즘 지수를 공개했다. 포퓰리즘 지수는 183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포퓰리즘을 내세운 대선 후보자가 얻은 지지율과 득표율을 집계해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