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로 다가온 한국은행 총재 임기만료를 앞두고 후임 하마평이 무성하다. 중앙은행 역할이 중요함은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특히 신임 총재는 미국 금리인상으로 국제금융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을 앞두고 있어 그 소임이 어느 때보다도 막중하다. 한마디로 기획재정부 장관과 긴밀하게 협조해서 미국 금리인상으로 있을 수도 있는 외환위기를 방어하면서 동시에 세계 경제 회복세와 동떨어져 침체를 지속하고 있는 국내 경기도 살려야 하는 이중, 삼중의 책무를 수행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한은 총재의 필요조건은 무엇일까. 첫째, 세계 경제 및 한국 경제 동향과 전망, 특히 거시경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통화·환율정책은 시차를 두고 경제에 영향을 미치므로 향후 거시경제에 대한 예측능력은 필수적이다.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현장밀착 경제전망을 위해 선행지표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회사 헤드라이트 판매동향을 직접 알아보았다거나 미 상무부 국민소득과장과 자주 통화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둘째,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수립, 집행하고 환율정책도 위임받아 운영하는 기관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통화·환율정책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여야 한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금리 0.25%포인트 조정이 성장·고용·물가·환율·자산가격 등 국민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오랜 연구와 분석 경험을 토대로 체감하고 있어야 한다.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 대비해야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당시 미 연준 의장이었던 버냉키는 전대미문의 양적완화(QE)라는 수단을 내세웠다. 버냉키가 통화정책의 대가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거센 비판으로 정책수행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대공황 확산 원인이 신용경색이라는 그의 논문은 대학원 과정에 필수적인 고전일 정도로 그는 신용중시 경제학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학계는 물론 미 의회에서도 새로운 실험을 비판 없이 수용했고 미국경제는 가장 빨리 회복됐다.

그만큼 말로만 ‘빅네임’이 아닌 실질적인 통화·환율정책의 최고 전문가가 총재가 돼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통화·환율정책은 고환율론과 저환율론 등 관점도 중요하다. 위기가 재발할 수도 있는 현재 한국 경제 여건에서 어떤 관점을 가진 전문가가 필요한지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미국 금리 인상이 추진될 전망이다. 과도한 경기회복으로 올해 중 4차례의 금리인상이 전망되고 있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도 미국 금리 인상이 있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신임 총재 재임 중 신흥시장국가 외화유동성이 불안정해지면서 잘못하면 1997년, 2008년 같은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수만 킬로미터 밖에서 지진이 오고 있는 것을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전문가들은 조금이라도 먼저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처럼 다가올 국제금융 불안이 위기가 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전망하고 대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금융부실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능력과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 수립과 집행을 총재 혼자 하는 것은 아니고 우수한 스태프들이 뒷받침해 준다. 여기에 의사결정을 같이하는 금융통화위원도 있지만 총재의 판단과 관점이 가장 중요하다.

국회청문회는 사소한 비리 폭로보다는 이러한 정책능력 검증의 장이 돼야 한다. 한국 경제는 중요한 분수령을 앞두고 있다.

과거 참여정부시절 또는 지난 대선 과정의 공로 등으로 신임 총재를 임명할 경우 그 대가는 부메랑이 돼 현 정부는 물론 한국 경제를 강타할 것이다. 거시경제 이해력, 통화·환율정책 수행능력, 위기대응능력을 겸비한 훌륭한 신임 총재가 한국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