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heyhoney>

1970~80년대에는 헌책방이 많았다. ‘공씨책방’이 유명했다. 1972년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문을 열었는데 주인의 성(姓)이 공씨였다. 1980년대 광화문 쪽으로 옮겼고 전국 최대 규모 헌책방이라고 했다. 1995년에 신촌으로 이전했다. 2013년 서울시로부터 ‘서울 미래유산’ 지정을 받기도 했지만, 46년 전통과 명성에도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결국, 월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이달 초 이사를 간다고 한다. 서울 성동구청이 전국 최초로 만드는 성수동 공공임대상가로 자리를 옮긴다. ‘공공안심상가’라는 이름대로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이 내쫓기는 현상)에 내몰린 상인들이 마음 편하게 장사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라고 한다. 8층짜리 상가에 총 35개 상점이 입주하는데 계약금, 권리금이 없다고 한다. 임대료도 주변 평당 임대료(9만원 안팎)의 60~70% 수준이고, 5년 장기 계약이 장점이다. 신촌 매장은 132㎡(40평)인데 성수동은 36㎡(11평)로 줄어든다. 다 좋을 순 없는 모양이다.

1~2년에 한 번 들른 정도지만 공씨책방이 임대료에 쫓겨 이사를 간다니 서운한 마음이 든다. 1970년대 계몽사에서 펴낸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의 마지막 50번째권은 ‘한국창작동화집’이었다. 그 책을 다시 갖고 싶어서 헌책방을 돌아다니곤 했다. 아이들 읽는 동화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는데, ‘인어’라는 제목의 동화는 특히 그랬다.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바위까지 헤엄쳤는데 인어를 만났다. 그녀와 결혼했지만, 몇 년 뒤 아이만 남겨두고 바다로 돌아가 버렸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가 소라고둥을 불면서 좋아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많은 장난감을 주고 바꿨다고 한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런 내용이었다. 가끔씩 뜬금없이 쫓기듯이 인터넷을 뒤지고 동대문 등의 헌책방을 돌아다녔다. 간혹 전집을 모두 산다면 팔겠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책값이 만만찮았다. 그래서 아직 손에 넣지 못했다. 공씨책방이 대명사였던 헌책방들은 그렇게 옛 시간이 잠자는 곳이었다.


오프라인 매장 늘리는 온라인 서점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중고책 하면 ‘알라딘’이라는 기업형 중고서점을 떠올리게 됐다. 알라딘은 2011년 서울 종로에 1호점을 연 뒤 6년 동안 34호점까지 냈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매장을 가 본 적이 있었는데 넓고, 정리가 잘돼 있어 헌책 파는 곳이라고 하기가 어색할 정도였다. 좁은 통로에 노끈으로 묶어놓은 책들이 있고 책먼지가 날리는 헌책방들과 달랐다. 중고책은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매장이 낫다. 고객들이 책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한 알라딘이 이걸 안다. 공씨책방처럼 켜켜이 쌓인 추억과 스토리들은 없지만, 중고책을 최신 기법으로 판다.

공씨책방 이전을 젠트리피케이션과 연결시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건물주가 바뀌면서 임대료를 2배 이상 요구했다고 한다. 공씨책방을 찾는 발걸음들이 예전처럼 많지 않아 더 버티기 어려웠다는 말도 나온다. 만약에 공씨책방이 임대료 싼 곳을 찾아서, 성동구청의 지원을 받아서 이사하는 것보다 스토리와 브랜드를 키우고 살리려는 노력을 더 해봤으면 어땠을까. 임대료 낮출 궁리보다 매출 늘릴 궁리를 했으면 어땠을까? 기업이든, 자영업이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 시장의 경쟁에서 멀어지고 활력이 떨어지게 된다. 세금 덜 내고, 각종 지원금 받기 시작하면 안주하게 된다. 공씨책방이 관광코스 대접이나 받게 될까 걱정이다. “이곳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해서 만들어진 공공임대상가입니다. 유명한 공씨책방도 여기 있습니다”라는 소개나 받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알라딘보다 수십배는 풍부한 스토리들을 무기로 브랜드 파워를 키우고 판매망을 넓혔다면 어땠을까. 공씨책방 브랜드로 전국에 가맹점을 늘려봤다면 어땠을까. 자꾸 아쉬움이 남아서 하는 소리다.

이진석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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